항목 ID | GC014011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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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道宰永世不忘碑 |
영어의미역 | Memorial Stone for Yi Dojae |
이칭/별칭 | 어사 이공도재 영세불망비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상남도 양산시 교동 198-2[교동1길 10]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한태문 |
성격 | 금석각류|영세불망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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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일시 | 1903년 |
관련인물 | 이도재 |
재질 | 화강암 |
높이 | 114.5㎝ |
너비 | 41㎝ |
소재지 주소 | 경상남도 양산시 교동 198-2[교동1길 10] |
소유자 | 양산시 |
[정의]
경상남도 양산시 교동에 있는 조선 말기 경상도 암행어사 이도재(李道宰)의 덕을 기리는 영세불망비.
[건립경위]
1883년 경상도 암행어사로 파견된 이도재는 양산 지역에 와서 청렴을 지키는 가운데 돈을 내어 둑을 쌓아 재난을 방지하는 등 공적을 쌓았다. 이를 양산 백성들이 결코 잊지 않으려는 생각에서 비석을 세웠다.
[위치]
양산시 교동에 있는 양산향교 앞 비석군 왼쪽 비석군의 뒷줄 정문 담장으로부터 4번째에 놓여 있다.
[형태]
비두와 비신 및 비좌로 이루어져 있다. 비석 재질은 화강암으로, 비두는 높이 31㎝, 너비 71.5㎝, 두께 50㎝로 팔작지붕 모양의 가첨석(加檐石)이다. 비신은 높이 114.5㎝, 너비 41㎝, 두께 14.8㎝이고, 비좌는 가로 84㎝, 세로 61㎝, 높이 7㎝의 시멘트로 되어 있다. 비문은 중앙의 큰 글씨 외에는 읽기가 쉽지 않다.
[금석문]
비의 앞면 중앙에 큰 글씨로 ‘어사이공도재영세불망비(御使李公道宰永世不忘碑)’라 적고, 양쪽에 작은 글씨로 4언시를 새겼다. 오른쪽에는 ‘어명을 받들어 남방으로 왔으니 아, 성대하도다. 깨끗한 명성이 드러나니 (모두가) 돌아가지 않기를 바란다네(奉命南來 猗歟盛哉 廉聲有著 □度無回)’라고 새겨져 있으며, 왼쪽에는 ‘돈을 내어 은혜를 베풀었으니 보를 쌓아 재앙을 방비한 것이라네. 백성들이 살면서 덕을 기림이 높이 솟았다네(傾金施惠 堰水防災 居民頌德 片民崔嵬)’라고 새겼다. 뒷면에는 큰 글씨로 ‘광무칠년계묘삼월일립(光武七年癸卯三月日立)’이라 새겨 1903년 3월에 세웠음을 밝혔다.
[현황]
1985년 당시 양산군수였던 이두연이 이도재 영세불망비를 비롯하여 양산 지역에 흩어져 있던 비석들을 양산시 교동에 있는 양산향교의 정문인 풍영루(風詠樓) 앞에 모아두었다. 비석들은 대부분 옛날 관아 터에 있던 것으로, 비석군은 왼쪽 비석군과 오른쪽 비석군으로 나뉜다. 이도재 영세불망비가 속한 왼쪽 비석군은 길이 14m 40㎝, 높이 50㎝의 철제 보호 난간으로 둘러져 있고, 폭은 5m 26㎝이다. 주변에는 유림회관을 비롯하여, 양산여자고등학교, 춘추공원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