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401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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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楊春到 |
영어음역 | Yang Chundo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내송리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김강식 |
성격 |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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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내송리 |
성별 | 남 |
생년 | 1902년 |
몰년 | 미상 |
본관 | 중화(中和) |
대표경력 | 동래시장 만세운동 참가 |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양춘도(楊春到)는 1902년 아버지 양경률(楊敬律)과 어머니 고상남(高尙南)의 장남으로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내송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범어사에 출가하여 명정학교를 다니면서 승적(僧籍)을 가졌다. 1937년 박무금(朴武今)과 결혼하여 일본 동경으로 건너갔다.
[활동사항]
양춘도는 1919년 3월 18일 동래시장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1919년 서울에서 3·1운동에 참석한 김영규 등이 돌아오자 범어사 명정학교와 범어사 지방학림 학생들을 중심으로 만세 운동 거사일을 3월 18일로 정하였다. 3월 17일 두 학교 졸업생 송별회에서 시작하여 동래시장을 중심으로 이틀간 만세 시위를 하였다. 양춘도는 시위 도중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부산지방법원에서 징역 6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