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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402118
한자 梁山牛市場
영어의미역 Yangsan Cattle Market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유형 지명/고지명
지역 경상남도 양산시 북부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임영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우시장

[정의]

경상남도 양산시 북부동에 있었던 우시장.

[개설]

우시장은 소를 거래하는 시장으로 쇠전·쇠장·소시장 등으로 불리며, 소뿐만 아니라, 염소·돼지 등 몸집이 큰 가축들도 거래되므로 가축시장이라고도 한다. 과거 대부분의 정기 시장에는 우시장이 있었다. 전라도에서 발생한 장시가 조선 후기부터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우시장도 이 시기에 존재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조선 후기에는 특정 우시장의 규모가 크고 거래 두수가 많다는 정도일 뿐, 우시장에 관한 상세한 자료는 없는 상태이다. 일제강점기에는 독립된 가축시장이 열렸는데, 1918년에는 경상북도 91개 소, 강원도 67개 소, 황해도 63개 소, 전라남도 58개 소, 충청남도 52개 소, 경상남도 및 평안도 50개 소, 경기도 47개 소 등 전국적으로 655개 소의 가축시장이 있었다.

[형성 및 변천]

양산우시장은 조선 후기부터 1·6일에 5일 주기로 북부동에서 열렸던 양산오일장의 한 구역에서 소를 거래하면서 형성되었다. 상주하는 10여 명의 중개업자가 판매자인 양산 지역 농민과 구매자인 부산 구포 지역 도살업자 간의 거래를 도왔다.

1978년 5월 상설 시장인 남부시장의 개설로 양산오일장이 폐지되자, 양산우시장양산시 상북면 석계리로 이전하였다가 활기를 잃고 역시 폐지되었다. 양산우시장 터는 양산시 북부동 490번지로 추정되는 데, 현재 양산소방서~백제장여관의 서쪽 구역에 해당한다.

양산우시장에서는 주로 소가 거래되었고, 돼지와 염소도 소량 거래되었다. 거래 두수는 1930년대 1일 30두 정도였고, 1960년대에는 1일 30~40두 정도였다. 양산우시장의 동쪽에는 포목, 어물, 신발 등의 일반 점포가 있었고, 남쪽에는 닭·오리·토끼 등의 가금시장이 있었다. 일반 점포와 양산우시장 사이에는 국밥집을 비롯한 음식점이 자리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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