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4B0102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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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서리마을 국사당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향토사연구회 |
서리마을 뒷산 정상에 국사당(局司堂)이 있다. 주소는 지산리 134-1이다. 본래 국사당의 자리는 통도사 사문암 쪽에 평평한 절터가 남아 있는 곳에 있었다고 전한다. 하지만 현재의 위치는 마을의 뒷산 정상에 있다는 상징성을 지니고 있으며 불교와는 관련이 없는 토속 신앙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향토사학자들은 보고 있다.
사당의 규모는 크지 않지만 콘크리트와 목조가 결합하여 맞배지붕의 정면 3칸과 측면 1칸으로 되어 있다. 『하북면지』와 양산시 하북면 거주 지명구(지산마을 출신 전 하북면장) 씨의 말에 의하면 국사당은 원래 통도사 입구 좌측에 있는 자그만 봉우리인 예지봉에 있었고, 그 때는 통도사에서 제사를 지냈는데, 어느 시기에 현재의 위치인 서리마을의 뒷산으로 옮겨왔다고 하였다.
옮겨진 동기는 확실하지 않지만,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조선 말기 억불정책(불교를 억제하는 정책)’으로 사찰에 해를 끼치려는 관원이 말을 타고 국사당 옆을 지나가려 하자 말이 꼼작도 하지 않았다고 하고 말에서 내려야 함으로 하마리라는 이름이 붙여지기도 하였다고 한다. 관원이 더 이상 나아가지를 못하자 국사당을 현 위치로 이건(이동하여 지음)하였다고 한다.
국사당에 산왕대신을 조각을 해서 모셔놓고, 1991년까지 통도사에서 음력 1월 14일에 제를 지냈으며, 서리마을에서도 음력 3월 3일과 9월 9일에 제를 올렸다. 하지만 그 동안 국사당은 제대로 보존을 하지 못해 낡고 허물어져 가고 있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하북면민들이 후손들에게 조상의 숨결과 발자취가 서려있는 정신적 문화유산을 물려주고자 1995년 3월 우동신 씨를 위원장으로 하는 ‘국사당 보존위원회’를 결성하였다. 그 결과 양산시로부터 4천 만 원 정도를 받아 국사당 재건에 나서 1995년 7월 31일 준공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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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왕대신
처음 창건의 시점은 알 수 없지만, 1995년 재건을 위해 해체하였을 때 상량(대들보)에 광서 21년(1895년)에 중건하였다는 글이 있었고, 그 후 1935년에도 중수하였다고 한다.
국사당의 발생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전해 오는 말들을 종합하면 역시 원시신앙의 중심인 하늘을 신으로 모시는 천신신앙에서 발생한 것으로 하늘과 가까운 높은 산 정상에 국사를 모셔 놓고 지역 수호신으로 섬겨왔다.
호랑이로부터의 피해를 막을 수 있는 철마(鐵馬)를 모시기도 하였는데, 서리 국사당에는 석마를 모셔 호랑이로 부터의 피해를 막고자 했다. 또한 비가 안 오면 내원사 안에 제를 지내고 국사당에서 제를 지내고 했었다.
국사당에는 소장품 10건 11점이 있다. 그 중 목조국사대신상 1점, 석마상 1점, 목마상 1점 등이 대표적인 것이다. 그리고 시주명 현판은 1935년을 비롯한 것이 몇 점 있다. 그러나 국사당이 TV에 나온 이후 3일 만에 주민들이 ‘국사할배’라고 부르는 조각상이 분실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국사당 조각을 전에 사진을 찍어 놓은 것을 바탕으로 똑같이 만들어 놓았고, 하북면의 안녕을 위해서 하북면 면민의 날에 가서 제를 지내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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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조국사대신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