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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남국주(南國柱)[1690~1759]는 경사(經史)에 조예가 깊었으며, 문집으로 『봉주집(鳳洲集)』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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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학자. 남몽양(南夢陽)[1771~1850]의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응길(應吉), 호는 야은(野隱)이다. 남필대(南必大)의 7대손으로, 아버지는 증(贈) 좌승지(左承旨) 남경렬(南景烈), 어머니는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지낸 조순도(趙純道)의 딸 증(贈) 숙부인(淑夫人) 한양조씨(漢陽趙氏)인데, 숙부 남경희(南景熙)와 안상침(安尙沉)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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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남제명(南濟明)[1668~1751]은 영덕 지역의 처사형 학자로 『수약당집(守約堂集)』을 비롯해 여러 저술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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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남필대(南必大)[1608~1666]는 학행으로 천거되어 태릉참봉(泰陵參奉)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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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효자. 백사복(白思復)[1745~1795]의 본관은 대흥(大興), 자는 성초(性初)이다. 아버지는 백광욱(白光頊), 어머니는 이유당(李維堂)의 딸 진성이씨(眞城李氏), 조부는 백시웅(白時雄), 증조부는 백세경(白世經)이며, 부인은 조석형(趙錫衡)의 딸 증(贈) 영인(令人) 한양조씨(漢陽趙氏)이다.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지낸 재종숙 윤화(白潤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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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효자. 신광열(申光烈)[1658~1730]은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의 원한을 풀고자 1689년(숙종 15) 도성으로 올라가 격쟁(擊錚)[조선 시대에, 원통한 일을 당한 사람이 임금이 거둥하는 길에서 꽹과리를 쳐서 하문을 기다리던 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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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의병. 신규년(申虬年)[1544~1592]의 본관은 평산(平山)[영해(寧海)], 자는 덕수(德叟), 호는 풍림(楓林)이다. 아버지는 선략장군(宣略將軍) 신응룡(申應龍), 어머니는 허충량(許忠良)의 딸 김해허씨(金海許氏), 조부는 부사직(副司直)을 지낸 신종회(申從澮), 증조부는 수의부위(修義副尉) 신명령(申命齡)이며, 부인은 통정대부(通政大夫) 백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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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의병. 신의제(申義濟)[?~?]의 본관은 평산(平山)[영해(寧海)], 자는 시보(時普), 호는 삼우정(三友亭)이다. 신득청(申得淸)의 7대손으로, 생부는 증(贈) 장예원판결사(掌隷院判決事) 신봉상(申鳳祥), 어머니는 충순위(忠順衛) 장세양(張世讓)의 딸 순천장씨(順天張氏)이다. 백부인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신인상(申麟祥)과 백모인 참봉(參奉)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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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학자. 신재형(申在衡)[1649~1697]의 본관은 평산(平山)[영해(寧海)], 자는 백흠(伯欽), 호는 쌍청당(雙淸堂)이다. 아버지는 신성구(申聖龜), 어머니는 이구(李榘)의 딸 영천이씨(永川李氏), 조부는 진사(進士) 신길휘(申吉暉), 증조부는 장악원정(掌樂院正)을 지낸 신활(申活), 부인은 남유건(南有鍵)의 딸 영양남씨(英陽南氏)와 류균해(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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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효자. 신홍례(申弘禮)[1761~1833]는 효성으로 명성이 높았으며 여러 군직을 역임하였다. 수직(壽職)으로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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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 지역의 선사 시대부터 현재까지의 역사. 우리나라 구석기 시대는 약 70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후기 구석기에 이르러서는 사실상 한반도 전역에 인류가 생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덕에서도 오십천(五十川) 유역의 지품면 오천리, 송천(松川) 유역의 창수면 삼계리 일대를 중심으로 구석기 유적이 확인된다. 이 가운데 오천리 유적은 중기 구석기 혹은 그 이전으로 편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