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327
한자 開港期
영어공식명칭 Harbor-opening Period
이칭/별칭 한말,대한제국기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권대웅

[정의]

1876년부터 1910년까지의 경상북도 영덕군 지역의 역사.

[개설]

개항기 영덕 지역에서는 봉건 질서의 모순이 심화되는 가운데, 반봉건 농민 항쟁의 일환으로 이필제(李弼濟)의 난(亂)이 일어났다. 또한 우리나라가 제국주의 체제에 편입되자, 영덕 유림들은 개항에 반대하는 1881년 만인소운동(萬人疏運動)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을미왜변 이후에는 일제의 침략이 노골화되는 가운데 국권 회복을 위해 의병운동과 애국계몽운동이 전개되었다.

[행정구역 개편]

1895년(고종 32) 정부는 효율적인 지방 통치를 도모하기 위하여 제2차 갑오개혁[을미개혁]의 일환으로 23부제(二十三府制)를 실시하였다. 이때 부·대도호부·목·도호부·군·현으로 구분되어 있던 기존 지방 행정 구역이 부(府)와 군(郡)으로 이원화되었는데, 기존의 영덕현(盈德縣)은 영덕군(盈德郡),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영해군(寧海郡)으로 개편되었다. 그러나 23부제의 불합리성 때문에 1896년 바로 폐지되고 13도제가 실시되면서 영덕군·영해군은 경상북도에 소속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개항과 일제의 침탈]

영덕 지역은 동해안의 군사적 요충지였기에 일찍이 이양선(異樣船)의 출몰이 잦았다. 특히 개항 이후에는 동해안으로 침입한 일본 어선과 군함이 횡행하면서 일제의 침략을 직접적으로 받게 되었다.

개항기 동안 일제는 동해안 지역에 어업 기지를 확보하고 경제적 이권을 침탈하였다. 이에 1896년 3월 의병운동이 전개되는 가운데 영덕 의병이 일본 어선을 공격하여 일본 어민 15명을 사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러자 일본군 군함을 출동시켜 함포를 발사하고 내지에 상륙하여 군사 작전을 펼치기도 하였다. 1904년에는 러일전쟁이 발발하면서 영덕 동쪽의 울릉도 수역은 양국 군대의 각축장이 되었다.

[반제 반봉건 항쟁]

영덕 지역은 19세기 중반 향촌 사회 내부에서 신향(新鄕)과 구향(舊鄕)의 갈등과 대립이 표출되었고, 1860년대 이후에는 동학(東學) 교단의 중요한 거점이 되었다. 이렇게 중세 봉건 사회의 모순이 심화되는 가운데, 1871년 이필제와 동학 교도가 주도하여 난을 일으켰다. 이들은 관아를 점령하고 영해부사 이정(李炡)를 처단하였다. 그러나 이필제는 문경에서 봉기를 도모하다 체포되었고, 영덕 지역 동학 세력은 거의 괴멸하였다. 이 때문에 1894년 동학농민전쟁이 일어났을 때 영덕 지역에서는 전혀 움직임이 일어나지 않았다.

한편, 1880년에 이르러 조선 정부가 미국과의 통상을 추진하자, 위정척사(衛正斥邪) 계열의 보수 유림들은 이를 적극적으로 반대하였다. 특히 영남 지역에서는 1881년 만인소가 올라가게 되는데, 당시 영덕현에서는 1명, 영해도호부에서는 2명의 유림이 참여하였다.

[국권회복운동]

1. 의병운동

1895년 을미사변(乙未事變)과 단발령(斷髮令)이 일어나자 전국적으로 보수 유림이 주축이 되어 전기 의병운동이 전개되었다. 이에 1896년 영덕에서는 영덕의진(盈德義陣)영해의진(寧海義陣)이 결성되어 활동하였다. 영덕의진은 1896년 3월 영덕군 지품면 송천리에서 결성되었는데, 대장 김건(金健), 군문도지휘 겸 총포장(軍門都指揮兼摠砲將) 김노헌(金魯憲), 전방장(前防將) 심의종(沈宜宗), 후방장(後防將) 신병렬(申炳烈), 서기(書記) 송문익(宋文翼) 등과 포군 42명이 참여하였다. 이들은 5월에 청송의진을 지원하였고, 7월에는 김하락(金河洛)의 이천의진과 합세하여 일본군을 상대로 영덕군 우곡리에서 전투를 벌였다. 영해의진은 영해 일원의 사족들이 주축이 되어 3월 24일 창수면 인량리에서 창의하였다.

후기 의병은 1905년 을사늑약을 계기로 일어났으며, 1907년 군대 해산으로 더욱 확산되었다. 영덕 지역에서는 신돌석(申乭石)이 1906년 3월 결성한 영릉의진(寧陵義陣)이 동해안을 중심으로 활약하였다. 그 외에도 김병두(金秉斗)·백남수(白南壽)·박석용(朴石用)·신태종(申泰鍾)·정조영(鄭兆永)·한용수(韓鎔洙)·김일원(金日元) 등의 의병장들이 의병운동을 전개하였다.

2. 애국계몽운동

영덕 지역의 애국계몽운동은 신교육구국운동으로 전개되었다. 일찍이 영덕 지역에는 1908년 설립된 장사학교(長沙學校)를 시작으로 축산면의 위산학교(爲山學校), 병곡면의 영동학교(寧東學校), 영해면의 협창학교(協昌學校), 지품면의 일신의속(一新義塾), 영덕읍의 영신학교(盈新學校) 등이 설립되어 신교육을 실시하였다. 한편, 영해 출신의 권영조(權永祚)는 1908년 3월 서울에서 설립된 교남교육회(嶠南敎育會)에 참여하였으며, 고향에서도 신교육 보급에 크게 공헌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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