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응청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684
한자 金應淸
영어공식명칭 Kim Eungcheong
이칭/별칭 직재(直哉),경재(敬齋)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지품면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병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466년연표보기 - 김응청 출생
활동 시기/일시 1504년 - 김응청 진사시 입격
활동 시기/일시 1518년 - 김응청 현량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519년 - 김응청 진산 유배
활동 시기/일시 1521년 - 김응청 예빈시 별좌 임명
몰년 시기/일시 1546년연표보기 - 김응청 사망
출생지 경상북도 영덕군 지품면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경상북도 영덕군 지품면 지도보기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야성
대표 관직|경력 예빈시별좌

[정의]

조선 전기 영덕 출신의 문신.

[개설]

김응청(金應淸)[1466~1546]은 진사시에 입격한 후 1518년 현량과(賢良科)로 선발되어 관직에 올랐다. 이듬해 기묘사화가 일어나 진산(珍山)에 유배되었다.

[가계]

김응청의 자는 직재(直哉), 호는 경재(敬齋)이며, 본관은 야성(野城)[영덕]이다. 김취린의 11세손으로, 고조할아버지는 김화(金和), 증조할아버지는 김여(金吕), 할아버지는 김근(金瑾)이며, 아버지는 동빈(東濱) 김수문(金秀文)이며, 부인은 신용개(申用漑)의 딸 고령신씨(高靈申氏)이다. 형은 남포(藍浦) 김응하(金應河), 동생은 김응빈(金應濱)이다. 아들 김사(金獅)[1510~1593]는 학행으로 천거되어 기자전 참봉(箕子殿參奉)에 제수되었다.

[활동 사항]

김응청은 학식이 있고 몸가짐이 성실했으며, 착한 품성으로 사람들을 인도하고 빈곤하면서도 잘 사는 것을 도모치 않았다. 김응천은 조광조(趙光祖)의 문인으로 1504년(연산군 10) 진사시에 입격하였다. 학행(學行)이 있어 1518년(중종 13) 현량과에 급제하였다. 그러나 1519년 기묘사화가 일어나 조광조·김정(金淨)·기준(奇遵) 등과 함께 피화되었다. 진산에 3년간 유배되었다가 풀려났다. 이후 고향에서 장일취(張日就)·신명보(申命保)·김응하와 더불어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에 힘썼다.

1521년(중종 16) 예빈시 별좌에 있으면서 녹직(祿職)을 제수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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