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818
한자 金秉斗
영어공식명칭 Kim Byeongdu
이칭/별칭 김경삼
분야 역사/근현대,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권영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79년 1월 17일연표보기 - 김병두 출생
활동 시기/일시 1896년 - 김병두 김하락의진 활동
활동 시기/일시 1906년 3월 - 김병두 영릉의진 참모장
몰년 시기/일시 1952년 5월 4일연표보기 - 김병두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86년연표보기 - 김병두 대통령 표창 추서
추모 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 김병두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출생지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칠성리 지도보기
성격 의병
성별
대표 경력 영릉의진 참모장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영덕군 출신의 의병.

[가계]

김병두(金秉斗)[1879~1952]의 이명은 김경삼(金敬三)이며,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칠성리에서 태어났다.

[활동 사항]

김병두는 1897년 1월 김하락의진에 참여하였다. 김하락의진은 경기도 이천(利川)에서 일어난 의병부대로, 1906년 5월 22일 경상북도 영덕 지역으로 활동지를 옮겼다. 이후 영덕에서 군사 100여 명을 모집하여 영해로 이동하는 중 영덕군 축산면에 진을 설치하였는데, 영덕군 축산면은 김병두의 고향 마을이었다. 김병두김하락의진에 들어간 것이 아마도 김하락의진이 영덕에서 군사를 모집할 무렵이었을 것이다. 김하락의진은 북상하는 관군을 제지할 목적으로 영덕 주변의 각 의진과 연합하여 6월 3일 영덕전투에서 크게 승리하였다. 그러나 6월 4일 벌어진 오십천 남천쑤 전투에서 관군의 공격을 받고 의진은 흩어졌으며, 김하락도 순국하였다.

1906년 3월 13일 영해에서 신돌석영릉의진을 일으켰다. 신돌석이 의병을 일으키자 김병두도 참여하여 참모장을 맡았다. 영릉의진의 주요 공격 거점은 울진·평해 등지였다. 일본이 동해안 어장을 장악함으로써 우리 어민들에게 큰 피해를 입혔을 뿐만 아니라, 울진 일대를 전초기지로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1906년 4월 이래 울진을 여러 차례 공격하여 그곳 일본인을 사살하고 일본인 가옥과 우편물취급소 등을 파괴하는 등 많은 전과를 올렸다. 그러나 1908년 12월 12일 신돌석 의병장이 순국하자 의진은 해산되었고, 김병두는 은신하였다.

[상훈과 추모]

1986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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