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3007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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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梁吉 |
영어공식명칭 | Yang Gil |
이칭/별칭 | 양길(良吉)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강원도 영월군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 |
집필자 | 이희근 |
[정의]
남북국시대 강원도 영월 지역을 점령한 호족.
[개설]
양길(梁吉)[?~?]은 889년(진성여왕 3)에 북원(北原)[현 강원도 원주시]을 중심으로 반란을 일으킨 호족으로, 892년 휘하에 들어온 궁예로 하여금 현 강원도 영월군 일대를 점령하게 하였다.
[활동 사항]
신라 말 진성여왕의 실정이 거듭되고 재해가 잇달아 일어나 정부 재정이 궁핍해졌다. 이를 해결하고자 889년(진성여왕 3)에 관리를 지방에 파견하여 세금을 독촉하니 전국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이때 양길도 북원(北原)[현 강원도 원주]에서 세력을 떨치고 있었다.
892년 궁예는 죽주(竹州)[현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에 기반을 둔 기훤(箕萱)의 휘하에서 나와 양길에게 의탁하였다. 그 뒤 양길은 궁예를 크게 신임하여 군사를 나누어 주어 원정에 나서게 하였다. 궁예는 주천(酒泉)[현 영월군 주천면], 내성(奈城)[현 영월군 영월읍], 울오(鬱烏)[현 강원도 평창군], 어진(御珍)[현 경상북도 울진군] 등의 고을을 점령하였다. 894년에는 명주(溟州)[현 강원도 강릉시]의 김순식(金順式)이 투항하여서 양길은 영월 등 강원도 대부분 지역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어서 궁예는 저족(猪足)[현 강원도 인제군], 생천(牲川)[현 강원도 화천군], 부약(天若)[현 강원도 춘천시], 금성(金城)[현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등지를 차례로 점령하였다. 궁예의 승승장구에 놀란 패서(浿西) 지역의 호족들이 다투어 항복하였다. 당시 점령하거나 투항한 지역들은 양길이 아닌 궁예의 세력 기반이 되었다.
영토를 크게 확장한 궁예는 양길의 휘하에서 벗어나 독립하여, 스스로 왕이라 칭하고 관료 제도를 도입하였다. 양길 또한 강원도 일대를 비롯하여 국원(國原)[현 충청북도 충주시] 등 30여 성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궁예에 버금가는 세력을 지니고 있었다. 899년(효공왕 3) 위기를 느낀 양길은 궁예를 기습 공격하려고 하였지만 미리 정보를 입수한 궁예에게 오히려 역습당하여 크게 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