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3007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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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嚴興道 |
영어공식명칭 | Um Heungdo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강원도 영월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희근 |
[정의]
조선 전기 강원도 영월 출신의 향리.
[가계]
엄흥도(嚴興道)[1404~?]의 본관은 영월(寧越)이다. 할아버지는 엄세원(嚴世元)이고, 아버지는 엄한저(嚴漢著)이다. 어머니는 원주원씨(原州元氏)이다.
[활동 사항]
엄흥도는 1404년(태종 4) 영월에서 태어났다. 엄흥도가 영월군에서 호장(戶長)으로 복무하고 있던 1457년(세조 3) 6월에 단종(端宗)이 상왕(上王)에서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降封)되어 영월에 안치되었다. 이후 단종 복위 시도가 실패하면서 단종은 세조의 명을 받은 금부도사에 의하여 10월 24일 사사되었고, 시신은 청령포(淸泠浦)의 강물에 버려졌다. 이때 엄흥도는 후환을 두려워하지 않고 단종의 시신을 수습하였고, 관을 비롯한 장례 기구를 마련하여 영월 북쪽의 동을지(冬乙旨)에 장사 지내고는 숨어 살았다고 한다.
[상훈과 추모]
선조 때 엄흥도의 종손인 엄한례(嚴漢禮)에게 호역(戶役)을 면제하고 노산군의 묘역을 수호하게 하였고, 현종 때에 송시열(宋時烈)의 건의로 엄흥도의 후손을 등용하려 하였으나 소재지가 파악되지 않아 등용하지 못하였다. 이후에도 엄흥도 후손 등용 논의가 여러 번 있었으나 후손을 찾지 못하여 등용하지 못한 사례가 있다.
엄흥도는 숙종 대에 공조참의에 추증되었고, 1726년(영조 19) 공조참판에 증직되었다. 1833년(순조 33)에 다시 공조판서로 증직되었다. 엄흥도는 사육신(死六臣)과 함께 영월의 창절사(彰節祠)에 배향되었고, 1879년(고종 19) 충의(忠毅)라는 시호를 하사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