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3013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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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紀天錄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엄찬호 |
[정의]
임진왜란 당시 강원도 영월군 지역에서 의병으로 활동한 고종원이 기록한 일기.
[개설]
『기천록(紀天錄)』은 고종원(高宗遠)이 임진왜란(壬辰倭亂)[1592] 당시 형제들과 의병을 일으켰던 일과 영월 지역에 왜적이 쳐들어와 피난 갔던 일을 기록한 일기이다.
[저자]
『기천록』은 영월 지역에서 의병을 일으킨 고종원이 저술하였다.
[편찬/간행 경위]
『기천록』은 임진왜란 당시 영월에서 의병을 일으켰던 고종원 일가의 고난의 여정을 기록한 일기이다.
[구성/내용]
『기천록』은 임진왜란이 일어난 직후인 1592년 4월 20일부터 1592년 9월 6일까지의 기록이다. 고종원은 강원도 횡성 지역 세거 씨족인데 영월로 옮겨 와 진별리(津別里)에서 살다가 임진왜란이 일어났다는 말을 듣고 아우 고종길(高宗吉), 고종경(高宗慶)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고씨 형제들이 각지에 통문을 보내 의병을 모집하자 고종경의 문무 재주를 존경하던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모여 의병을 일으켰다. 영월 의병은 문무에 뛰어난 고종경을 의병장으로 추대하였고, 영월 지역으로 의병이 지나갈 것을 예상하고 홍천(洪川)과 영춘(永春) 사이의 험한 곳을 거점으로 하여 왜군의 진로를 차단할 준비를 하였다.
이때 강원도감사(江原道監司)이던 유영길(柳永吉)[1538~1601]이 왜군이 한양을 공격하기 위하여 가는 길에 남한강(南漢江)을 건너 강원도 원주(原州)로 들어올 것이라고 예상하여 고종경으로 하여금 의병을 이끌고 흥원진(興原陣)으로 갈 것을 명하였다. 이에 고종경은 의병을 이끌고 흥원진으로 출발하였으나 도중에 도망가는 병사가 많아 그 병사들을 추포하고 통솔하여 가느라 약속한 시간에 흥원진에 도착하지 못하였다. 그러자 유영길은 고종경의 지휘 책임을 물어 강원도 평창군(平昌郡)으로 이송 수감시키고 사형을 집행하였다.
그 후 1592년 8월 17일 왜적이 영월로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고종원은 가족을 데리고 진별리에 있는 동굴[현재 고씨굴(高氏堀)]로 피난하였다. 하지만 왜적이 피난민을 색출하기 시작하자 고씨 가족들은 굴 입구에 불을 놓아 왜적에 저항하다가 고종원의 부인 조씨는 굴 안의 연못에 투신하여 자결하였다. 고종원과 고종길 형제는 가족들을 데리고 훗날을 도모하며 투항하여 포로가 되었다. 원주 감영으로 압송되었던 고씨 형제는 몰래 탈출하였으나 도중에 다시 잡혀 고종길은 그 자리에서 죽고 고종원은 방면되어 영월로 돌아왔다.
[의의와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