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00961 |
---|---|
한자 | 光山金氏 |
영어의미역 | Gwangsan Gim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율촌면 산수리 봉두마을 |
집필자 | 김준옥 |
세거지 | 전라남도 여수시 율촌면 산수리 봉두마을|화양면 장수리 장등마을 |
---|---|
입향시기/연도 | 조선 선조 때 |
성씨시조 | 김흥광 |
입향시조 | 김명운|김덕조|김치하 |
[정의]
김흥광을 시조로 하고 김명운·김덕조·김치하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연원]
신라 45대 신문왕의 셋째 아들(혹은 49대 헌강왕의 셋째 아들로 기록된 문헌도 있다) 김흥광(金興光)은 통일신라 말기에 나라 안이 어지러워 장차 난리가 있을 것을 미리 짐작하고 광산현(光山縣) 서일동(西一洞) 즉 지금의 전라남도 담양군 대전면 평장동으로 자리를 옮겨 자연과 더불어 학문을 닦으며 살았는데, 그 후손들이 선조의 세거지인 광산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 왔다. 그 후 양간공파(良簡公派)·문정공파(文貞公派)·문숙공파(文肅公派)·낭장동정공파(郎將同正公派)·사온직장공파(司溫直長公派) 등으로 분파되었다.
[입향경위]
여수에 광산김씨가 처음으로 입향한 것은 인조 때로 조사되었다. 김명운(金命韻)은 논산 연산에서 율촌면 봉두마을로 입향했으며, 김덕조(金德垗)는 경기도에서 소라면 현천마을에 정착했다. 또, 문숙공의 후손 김치하(金致廈)는 현종 때에 충청남도에서 전라남도 장흥을 거쳐 여수시 삼일동 월내마을로 이주하여 살았으며, 문정공의 후손 김일(金鎰)은 숙종 때 광주에서 여수로 들어왔다.
[현황]
양간공파 후손들은 여수시 율촌면 산수리 봉두마을과 화양면 장수리 장등마을에 살고 있고, 문숙공의 후손은 삼일동 월내마을에 거주하다가 마을이 여수국가산업단지에 편입되면서 신도시로 분산되었다. 문정공의 후손은 소라면 관기마을과 율촌면 구암마을에서 대를 잇고 있다. 남면 두모리 직포마을에도 후손들이 살고 있다.
[관련유적]
여수시 율촌면 산수리 봉두마을에 광산김씨 27세손 장악원정(掌樂院正) 김명운을 추모하기 위한 영모재(永慕齋)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