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012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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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古代 |
영어의미역 | Ancient times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
시대 | 고대/삼국 시대/백제,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
집필자 | 김병호 |
[정의]
선사시대부터 후삼국시대까지의 전라남도 여수시의 역사.
[삼한시대]
여수 지역에는 삼한시대 마한연맹체의 하나인 원지국(爰池國)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4세기 후반 백제가 세력을 확장함에 따라 전라남도 지역에 위치한 여러 소국들은 백제의 영향 하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백제는 여러 소국들을 곧바로 군현(郡縣)으로 편제하거나 지방관을 파견하지 않았다. 소국의 족장세력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들을 통해 간접적 공납 지배를 했던 것이다. 여수 지역도 그러한 상황에서 백제에 편입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백제시대]
5세기 중반 고구려의 남하로 백제의 국력이 크게 약화되었으며, 가야국이 남원과 섬진강 하류 지역에 진출함에 따라 전라남도 동부 지역은 일시적으로 대가야에 편입되었다.
백제는 538년 수도를 사비성으로 옮기고 전국을 중앙과 동서남북으로 구분하여 5방(五方)을 두었다. 방에는 방성(方城)을 설치하고 여러 크고 작은 성을 군 또는 현으로 통제하여 지배하였다. 남방에 속했던 지금의 순천·여수·광양 지방에는 삽평군(歃平郡)이 자리잡고 있었다.
삽평군에는 원촌(猿村)·마로(馬老)·돌산(突山) 등 3현을 속현으로 두고 있었다. 원촌현은 여수반도 일원이며, 돌산현은 돌산도를 비롯한 인근의 섬을 그 영역으로 하였다. 이때부터 여수 지역에 처음으로 원촌과 돌산이라는 이름의 군현이 설치되었다.
여수에 남아 있는 백제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산성이 있다. 돌산 평사리에 위치한 월암산성, 선원동에 위치한 테미산성, 오림동의 자산산성, 문수동의 고락산성, 돌산 죽포리 본산성 등이 있다. 그러나 660년 백제가 신라에게 멸망당함으로써 여수 지역은 신라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통일신라시대]
신라는 삼국통일 후 확대된 영토를 통치하기 위해 지방 행정 조직을 개편하였다. 지방 행정 조직 개편은 677년(문무왕 17) 무렵 당의 세력을 축출한 후부터 687년(신문왕 7)에 걸쳐 추진되어 9주(九州) 5소경(五小京) 제도로 완성되었다. 이 제도는 신라가 단일 정부로서 중앙에서 백제와 고구려의 구 영토와 신라의 영토를 직접 통제할 수 있는 체제로 개편하여 관리를 지방으로 파견한 것이다. 그후 757년(경덕왕 16) 12월에 9주를 비롯한 군현의 명칭을 중국식으로 개칭하였다.
전 영토를 주·군·현제로 나누어 피라미드형의 행정 조직 체계를 세워 전국을 9주로 구분하고 각주 밑에 군을 두고 그 밑에 현을 두었다. 그리고 통일 과정에서 편입된 점령 지역의 지배층을 처리하기 위해 역시 각각 3주로 나누어 9주의 지방 제도가 이룩된 것이다.
9주제가 시행되면서 그 중의 하나인 무주(武州)[일명 무진주]는 현재의 전라남도 일원을 관할하였다. 여기에 속한 승평군(昇平郡)은 백제 때와 같이 영현은 셋이고 지명만 바뀌어 해읍현(海邑縣)[여수]·여산현(廬山縣)[돌산]·희양현(晞陽縣)[광양]으로 되었다. 이에 통일신라시대에 삼산면을 제외한 여수 지역은 해읍현[여수]과 여산현[돌산]이 되었다.
한편, 고흥군 지역에서는 분차군은 분령군(分領郡)으로, 조조례현은 충렬현(忠烈縣)으로, 두힐현은 강원현(薑原縣)으로, 비사현(比史縣)은 백주현으로 고쳐 부르게 됨에 따라 삼산면은 강원현(薑原縣)이 되었다. 통일신라시대 말단 지방 행정 구획은 촌락이었다.
신라 말에 이르러 전국이 혼란한 틈을 타 892년(진성여왕 6) 견훤이 무진주를 근거지로 건국한 후백제에 속하게 되었다. 이무렵 여수 지역 호족인 김총(金摠)은 후백제 세력에 가담하였다. 이와달리 돌산 지역은 강주(康州)의 왕봉규 세력에 속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