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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02170
한자 金溶淇
영어음역 Gim Yonggi
분야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화양면 안포리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김준옥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효자
출신지 전라남도 여수시 화양면 안포리
성별
생년 1855년연표보기
몰년 미상
본관 김녕
대표관직 사헌부감찰

[정의]

조선시대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김녕(金寧). 충의공 김문기(金文起)의 23세 후손이고, 김재광(金再光)의 아들이다.

[활동사항]

김용기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 말씀에 순종하여 어버이 섬기기를 하늘같이 하였다. 동구 밖 바닷가에 나가 어머니가 좋아하는 고기를 잡아드렸고, 때때로 산채나물을 마련하고자 해가 지도록 산을 헤매기도 하였다. 소년시절에 아버지를 잃은 그는 좋은 일이나 궂은 일이 있을 때마다 아버지의 묘소를 찾아가는 버릇이 있었고, 동네 어른들에게도 예의를 다하였다. 할아버지에게서 보고 듣고 배운 민간요법에도 밝아 지게꾼 의사라는 별명까지 얻게 되었다.

어느 날 어머니 심씨(沈氏)가 자리에 눕자 한의사로부터 보약 외엔 특효약이 없다는 말을 듣고, 백방으로 갖은 약을 다 써보았으나 차도가 없었다. 이에 자신의 넓적다리를 칼로 베어 새고기라 하면서 정성을 다해 바쳐 어머니를 소생시켰다. 이 소문이 나자 조정에서는 통훈대부 벼슬을 내렸고, 어머니는 그 후 20년을 더 살다가 세상을 떴다.

[상훈과 추모]

1884년 관찰사의 교지(敎旨)와 함께 표창을 받았고, 예조(禮曹)의 교서 등 12장의 교지가 내려졌다. 1896년 유생들의 건의로 정려(旌閭)가 세워졌다. 현재는 안정리 입구에 ‘증통훈대부사헌부감찰김녕김씨용기효자지려비(贈通訓大夫司憲府監察金寧金氏溶淇孝子之閭碑)’라 새겨진 비가 세워져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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