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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0767
한자 岐陽書堂
영어음역 Gayang Seodang
영어의미역 Giyang Village School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 537-1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정진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79년 12월 18일연표보기 - 기양서당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7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기양서당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재지정
성격 서당
양식 맞배지붕|팔작지붕
건립시기/일시 1615년(중종 11)연표보기
정면칸수 3칸(추원사)|5칸(역락당)
측면칸수 2칸(추원사)|2칸(역락당)
소재지 주소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 537-1 지도보기
소유자 류승우
문화재 지정번호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에 있는 조선 중기 서당.

[개설]

기양서당류의손(柳義孫, 1398~1450)류복기(柳復起, 1555~1617)의 위패를 봉안하고 제향하는 건물이다. 류의손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전주, 자는 효숙(孝叔), 호는 회헌(檜軒) 또는 농암(聾巖)이다. 1419년(세종 1) 생원시에 합격하고, 1426년(세종 8) 식년문과에 동진사로 급제하였다. 그 뒤 검열을 거쳐 감찰·수찬을 역임하였다. 1436년에 문과중시에 을과로 급제하고 곧 직제학에 올랐다. 1447년 이조참판으로 있을 때 동반직(東班職)에 있던 우부승지 김유양(金有讓)의 아들을 서반직(西班職)에 잘못 옮겨 놓은 죄로 파직되었다. 저서에 『회헌일고(檜軒逸稿)』가 있다.

류복기는 조선 중기의 학자로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성서(聖瑞), 호는 기봉(岐峯)이다. 할아버지는 인의(引儀) 류윤선(柳潤善)이다. 외숙 김성일(金誠一)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정구(鄭逑)와 더불어 교유하였다. 임진왜란 때 김해(金垓)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경상북도 안동시 예천 등지에서 싸웠으며, 정유재란 때에는 곽재우(郭再祐)를 따라서 화왕산성(火王山城)을 지켰다. 벼슬이 예빈시정(禮賓寺正)에 이르렀으며, 경상북도 안동의 기양리사(岐陽里社)에 제향되었다.

[위치]

기양서당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 537-1번지에 있다.

[변천]

기양서당은 1615년(중종 11) 류복기에 의해 처음으로 세워질 당시에는 후손들을 교육하기 위한 서당이었다. 그러나 후손들에 의해 추원사(追遠祠)가 세워지고, 1780년에 류복기의 위패가 봉안되고, 1806년에는 류의손의 위패가 추가로 봉안됨으로써 서원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원래는 경상북도 안동군 무실 남쪽 산록에 있었으나 임하댐 수몰로 1988년 현재 위치인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로 이건하였다.

[형태]

기양서당은 사당인 추원사, 강당인 역락당, 그 밖에 전사청과 고사로 이루어져 있다. 사당인 추원사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집이며, 강당인 역락당(亦樂堂)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집으로 동쪽과 서쪽에 각각 2칸 크기의 방(房)이 딸려 있다. 정문 내 처마에는 북이 매달려 있어 서당의 시간에 맞추어 또는 유사시에 쳤다고 한다.

[현황]

기양서당은 1979년 12월 18일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7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민속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2009년 현재 소유자는 류승우이다. 매년 정월 6일에는 정알례(正謁禮)를, 봄가을(3월과 9월) 초정일(初丁日)에는 향사(享祀)를 지낸다.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류** 언제나 가슴 뭉쿨한 말 故鄕
애기봉 아래 정다운 고향 무실
수백년 면면이 이어온 水柳의 땅

갑진생 날 용이되길 빌며
내 胎를 물에 묻었지만
용인들 아닌들 어떠랴

기성아제 장가들던 솔밭
기양서당 마째 넓은들
북적북적 신나던 임동장터

깊디깊은 물속 용궁으로 변하고
새로 지은마을 예전마을 아니니
낯설다 물설다 그리운 고향

우리 할배 묻히고 아배 묻힐곳
돌아가리 우리 어매 묻히고 나 묻힐곳
물안개 희미한 고향 무실 내고향
2011.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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