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09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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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東淸遠樓 |
영어공식명칭 | Cheongwollu Pavilion |
영어음역 | Cheongwollu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소산리 87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정진영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5년 10월 15일 - 안동 청원루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99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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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19년 12월 30일 - 안동 청원루 보물 제2050호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안동 청원루 보물 재지정 |
성격 | 누정 |
건립시기/일시 | 조선 중기 |
정면칸수 | 7칸 |
소재지 주소 |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소산리 87 |
소유자 | 김성진 |
문화재 지정번호 | 보물 |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소산리에 있는 조선 중기 누정.
[개설]
안동 청원루는 원래 중종(中宗, 1488~1544) 때 김번(金璠, 1479~1544)이 여생을 보내기 위하여 지은 집이다. 이후 병자호란 당시 인조(仁祖, 1595~1649)의 굴욕적인 강화에 반대한 척화(斥和) 주전론(主戰論)의 거두 김상헌(金尙憲, 1570~1652)이 청나라에서 6년 동안 옥살이를 하고 돌아와 다시 지었는데, 청나라를 멀리한다는 뜻으로 ‘청원루(淸遠樓)’라 이름 지었다.
[위치]
[변천]
안동 청원루는 중종 때 평양서윤을 지낸 김번이 건립하였다. 1645년(인조 23) 청음(淸陰) 김상헌이 누각으로 고쳐 세웠다. 원래 두 채로 된 건물이었으나 1934년 홍수로 인해 한 채만 남아 있다.
[형태]
좌익사(左翼舍)·우익사(右翼舍)를 중층으로 꾸미고 몸채 부분은 기단을 높게 조성한 후 단층으로 앉힌 다락집 형상의 ‘ㄷ’자형 평면으로 되어 있다. 정면은 7칸이다. 몸채 부분은 대청을 중앙에 두고 양 툇간에 온돌방을 둔 전형적인 중당 협실형(夾室形)이며, 특히 몸채 대청을 60㎝ 정도 폭으로 1단 낮게 하여 마루를 2단으로 구성한 점이 주목된다.
좌익사·우익사의 누마루는 내측으로 궁판에 풍혈(風穴)을 둔 난간을 세워 개방하고, 정면과 측면은 판벽(板壁)에 판장문(板牆門)을 달아 폐쇄하였으며, 누하부 전면 칸에 곳간을 두고 뒤쪽에는 아궁이를 설치하였다. 정면 원주 상부에는 길고 날카로운 살미를 끼우고 주두를 얹고 내측으로 보아지를 두어 대량을 받게 하였다.
도리 방향으로는 창방 없이 공아를 만들어 장혀와 처마 도리를 받게 한 이색적인 기법을 구사하였다. 익사(翼舍) 부분은 본채 부분과 달리 창방을 보내고 살미와 보아지를 넣은 형상을 취하고 있다. 익사 충량(衝樑)은 판대공을 관통시키고 충량 위에 동자주를 세워 접시받침을 넣은 후 외기(外機)를 받도록 하였다.
[현황]
1985년 10월 15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99호로 지정되었다. 2019년 12월 30일 보물 제2050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2009년 현재 소유자 및 관리자는 김성진이다.
[의의와 평가]
안동 청원루는 중층과 단층을 합성한 평면 구성과 세부 기법이 주목되는 건축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