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1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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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順天金氏 |
영어의미역 | Suncheon Gim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
집필자 | 김복영 |
세거지 | 안동시 풍천면 구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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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성촌 | 안동시 풍천면 구담리 |
입향시기/연도 | 15세기 초 |
성씨시조 | 김총(金摠) |
입향시조 | 김유온(金有溫) |
[정의]
김총을 시조로 하고 김유온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안동시 세거 성씨.
[개설]
안동의 순천김씨는 상주목사 권집경(權執經)의 사위가 된 국담(菊潭) 김유온(金有溫)이 조선 초 처가가 있는 안동 구담(현 풍천면 구담리)에 정착한 뒤 후손들이 세거하면서 형성된 가문이다.
[연원]
순천김씨의 시조 김총(金摠)은 신라왕실의 후예로 헌안왕 때 인가별감으로 있으면서 많은 공을 세워 평양군(平陽君: 평양은 순천의 옛 지명)으로 봉해졌다. 후손들이 김총을 시조로 삼고 순천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순천김씨 가문은 계유정란 때 후손인 김종서(金宗瑞)가 피살되고 멸문에 가까운 화를 당하면서 선대의 문헌이 모두 소실되어 자세한 상계의 역사를 상고할 수 없다고 한다.
[입향경위]
김유온은 병조판서를 역임한 김승주(金承霔, 1354~1424)의 아들로서 예조참의로 있다가 계유정란 이후 장인 권집경을 따라 구담촌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김유온의 후손들은 광산김씨(光山金氏), 순흥안씨(順興安氏) 등과 인맥을 형성하며 가세를 넓혔다.
김유온은 김원석(金元石)과 김형석(金亨石) 두 아들을 두었는데 김원석의 큰아들 김약균(金若勻) 계열은 임진왜란 때 신립 장군과 함께 탄금대에서 장렬하게 죽은 의주목사 김여물(金汝岉, 1548~1592), 인조반정의 일등공신 영의정 김류(金鎏, 1571~1648), 김경징(金慶徵) 부자 등이 임관하면서 다시 서울로 옮겨 가고, 안동에는 풍천면 일대에 김원석의 작은아들 김수한(金粹瀚) 계열과 김형석의 아들 목천현감 김약평(金若枰) 계열의 후손들이 세거하고 있는데 이들 계열에서도 문과 급제자 6명, 사마시 합격자 14명이 배출되었다.
김약평의 아들 김희열(金希說)은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병조참판, 전주부윤에 오르고, 김수한의 증손 동리(東籬) 김윤안(金允安, 1560~1620)은 백담(栢潭) 구봉령(具鳳齡)의 종질서가 되어 29세에 생원 진사 양시에 합격하고 문과에 급제하여 대구부사에 이르렀다.
[현황]
현재 안동의 순천김씨는 후사가 없는 외선조 권집경의 묘소를 지키면서 외손봉사를 하면서 구담리를 중심으로 풍천면 일대에 약 120호가 살고 있다.
[관련유적]
정언 김기황(金基璜)이 지은 취담정(翠潭亭)과 김수한의 손자 김협(金恊)이 지은 충효당(忠孝堂) 등 정자 건물이 구담리 동쪽과 서쪽에 있고, 외손봉사하는 권집경의 묘가 구담 동쪽 월암산(月岩山)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