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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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權璉夏 |
영어음역 | Gwon Yeonha |
이칭/별칭 | 가기(可器),이재(頤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주부 |
[정의]
조선 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가계]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가기(可器), 호는 이재(頤齋). 할아버지는 간원공(諫院公) 권문도(權文度), 아버지는 소헌공(疏軒公) 권재륜(權載綸), 어머니는 진성이씨(眞城李氏) 이대순(李大淳)의 딸이다. 양할아버지는 권동도(權同度), 양부는 권재덕(權載德)이다. 본래 양부 권재덕과 양모 의성김씨(義城金氏) 사이에는 권계하(權啓夏)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권계하가 다른 집안의 봉사손으로 가게 되면서 권연하가 권재덕의 양자가 되었다.
[활동사항]
권연하는 안동부(安東府) 춘양현(春陽縣) 유곡리(酉谷里, 현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에서 태어났다. 1833년(순조 33) 문천(文泉) 김희소(金熙紹)가 삼계동주(三溪洞主)의 직분을 이어 정재(定齋) 류치명(柳致明), 송서(松西) 강운(姜橒)과 함께 강론을 개설하자 주도면밀하게 질문하며 학문을 축적해 나갔다.
1838년(현종 4) 생부 권재륜의 명에 따라 류치명의 문하에서 공부하게 되었는데 류치명은 권재륜에게 편지를 써서 “우리 도의 운이 근래 막혀 있었지만 이런 친구를 얻어 다시금 진작시킬 수 있다니 너무도 기쁩니다”라고 칭찬하였다. 이때부터 류치명에게서 격물치지(格物致知)와 존양성찰(存養省察)의 요체, 경전의 요지와 예학(禮學)에 관한 변론에서부터 섭생(攝生)과 보건의 방법에 이르기까지 직접 전수받지 않은 것이 없었다.
1879년(고종 16) 경학(經學)으로 천거되어 선공감역에 제수되었다. 1881년 스승 류치명의 문집 『정재집(定齋集)』을 교감하였으며, 1882년 수직으로 돈녕부도정(敦寧部都正)에 증직되었고, 1887년 가선대부와 가의대부에 연이어 가자되었으나 사직소를 올렸다. 1892년 다시 가선대부로 증직되어 용양위호군에 제수되었다.
[학문과 사상]
권연하는 보수적인 유학자로서 기존의 체제와 가치가 도전받는 것을 싫어하였다. 이에 따라 기존의 체제와 가치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해박한 지식을 동원하여 새로운 학설들에 대해 반론을 펴는 한편, 자신의 신념에 입각하여 후학을 양성하고 전통적인 교육 제도를 확충하는 데 힘썼다.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각지의 서원이나 사우(祠宇)에서 빈번히 강회(講會)를 개최하는 한편, 각지의 효자·열녀·충신들에 대한 이야기를 발굴하여 책으로 엮어 내기도 하였다.
[저술 및 작품]
문집으로 『이재집(頤齋集)』 17권이 전한다. 옛 성현의 책을 숙독하여 학문에 뜻을 두기 위한 8가지 조목인 「지학팔목(志學八目)」을 찬술하였다. 곧 규모를 크게 할 것, 문로(門路)를 바르게 할 것, 강령을 정돈할 것, 조리를 삼갈 것, 규칙을 세울 것, 법도를 살필 것, 순서를 지킬 것, 경계를 통할 것이 그것이다.
[묘소]
묘소는 경상북도 봉화군 봉성면 우곡리 다덕현(多德峴)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