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2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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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琴蘭秀 |
영어음역 | Geum Nansu |
이칭/별칭 | 문원(聞遠),성재(惺齋),고산주인(孤山主人)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강민석 |
성격 | 문신|의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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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
성별 | 남 |
생년 | 1530년(중종 25) |
몰년 | 1604년(선조 37) |
본관 | 봉화 |
대표관직 | 봉화현감 |
[정의]
조선 중기 안동 출신의 문신이자 의병장.
[가계]
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문원(聞遠), 호는 성재(惺齋)·고산주인(孤山主人).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금헌(琴憲), 어머니는 영양남씨(英陽南氏)로 교수 남식(南軾)의 딸, 처는 횡성조씨(橫城趙氏)로 참판 조대춘(趙大春)의 딸이자 조목(趙穆)의 누이동생이다.
[활동사항]
금난수는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로부터 『소학(小學)』을 배우고, 임천서당(臨川書堂)에서 강학하던 청계(靑溪) 김진(金璡)에게 수학하면서 김극일(金克一), 김수일(金守一), 구봉령(具鳳齡), 이국량(李國樑) 등과 교유를 맺고 서로 강론하면서 ‘위기지학(爲己之學)’의 의미를 터득하게 되었다고 한다. 또 처남 조목과 함께 『심경(心經)』, 『주서(朱書)』, 『역학계몽(易學啓蒙)』 등의 책을 읽고 토론하였다.
계당(溪堂)에서 김진과 함께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강의를 들으면서 자질을 더욱 높여나갔다. 『심경』은 금난수가 평생 동안 가장 심복한 책으로써 이황으로부터 직접 전수를 받아 강학에 힘쓴 책이었다고 전해진다. 1561년(명종 16)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1577년(선조 10) 제릉참봉을 비롯하여 집경전참봉과 경릉참봉을 지냈고 1585년 장흥고봉사(長興庫奉事)가 되었다. 그 뒤 직장, 장례원사평을 지냈으나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노모를 봉양하기 위해 고향에 은거하다가 정유재란 때 고향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그해 성주판관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으며 1599년 봉화현감에 임명되었다.
[저술 및 작품]
문집으로 4권 2책의 목판본 『성재집(惺齋集)』이 있다. 문집은 시, 서(書), 잡저, 부록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권2의 서는 이황 및 벗들과 주고받은 편지로서 이황에게 보낸 편지는 대개 질문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이황의 답신 속에는 각 조목에 대한 답변이 문목(問目)의 형태로 제시되어 있다. 권3에 있는 「도산서당영건기사(陶山書堂營建記事)」는 도산서당 건립시의 전말을 상세히 기록한 것이다.
[묘소]
묘소는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단천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좌승지에 추증되고 예안의 동계정사(東溪精舍)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