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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1252
한자 琴應夾
영어음역 Geum Eunghyeop
이칭/별칭 협지(夾之),일휴당(日休堂)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오천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강민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오천리 지도보기
성별
생년 1526년(중종 21)연표보기
몰년 1596년(선조 29)연표보기
본관 봉화
대표관직 하양현감

[정의]

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협지(夾之), 호는 일휴당(日休堂). 아버지는 예안훈도(禮安訓導) 금재(琴榟)이다. 동생이 금응훈(琴應壎)이다.

[활동사항]

금응협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오천리에서 태어났다.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는데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은 일찍이 그의 자제들에게 “너희들이 소학(小學)의 모습을 보려면 저 금응협을 보라. 그 사람의 행실이 바로 소학 그대로이다.”라고 칭찬할 정도로 행동이 정직하고 용모가 단정할 뿐만 아니라 품성도 순수하였다고 한다.

30세 때인 1555년(명종 10) 사마시에 합격하고, 1574년(선조 7) 의로운 행동이 조정에 알려져 집경전참봉(集慶殿參奉)에 제수되었다. 다시 경릉참봉(敬陵參奉), 창릉(昌陵參奉), 왕자사부에 제수되었으나 모두 취임하지 않았다. 1587년 조정에서는 유일(遺逸)로 뽑아서 6품직을 뛰어넘어 하양현감을 제수하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부모의 봉양을 이유로 사직하였다.

스승 이황이 세상을 떠난 뒤 계문의 제자들이 실천궁행(實踐窮行)의 학문에 힘쓰지 아니하고 과거를 숭상하는 폐단에 점차 빠져들게 되자 자신을 더욱 꾸짖어 ‘충신독경(忠信篤敬)’을 학문의 근본으로 삼고 ‘독서강의(讀書講義)’를 자신의 소임으로 삼아 『심경(心經)』, 『근사록(近思錄)』 등의 공부에 더욱 힘을 쏟았다.

[저술 및 작품]

문집으로 『일휴당집(日休堂集)』이 있다.

[묘소]

묘소는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지례리에 있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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