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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1263
한자 金圻
영어음역 Gim Gi
이칭/별칭 지숙(止叔),북애(北厓),근성재(近省齋)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오천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강민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오천리 지도보기
성별
생년 1547년(명종 2)연표보기
몰년 1603년(선조 36)연표보기
본관 광산
대표관직 순릉참봉

[정의]

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의병.

[가계]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지숙(止叔), 호는 북애(北厓). 증조부는 광산김씨(光山金氏) 예안 입향조 생원 김효로(金孝盧), 할아버지는 김수(金綏), 아버지는 절도사를 지낸 김부인(金富仁), 어머니는 영천이씨(永川李氏)이현보(李賢輔)의 딸이, 처는 창원황씨(昌原黃氏)로 통사랑(通仕郞) 황익(黃釴)의 딸이다. 증조부 김효로부터 김기에 이르기까지 줄곧 안동부 예안현 오천리(현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오천리)에서 세거하였다.

[활동사항]

김기는 어려서 중형(仲兄) 김전(金㙉)과 함께 퇴계(退溪) 이황(李滉)에게 나아가 배움을 청했으며, 20세에는 이황이 직접 자(字)를 지어주었다. 이황 사후 조목(趙穆)을 스승으로 모셨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종형(從兄) 김해(金垓)와 함께 의병을 일으키고 군량미를 모으기 위해 글을 지어 고을 사람들을 설득하였다. 정유재란 때에는 안동 27의사와 함께 화왕산성(火旺山城)에 들어가 왜적과 싸워 공을 크게 세웠다.

1598년 도산서원(陶山書院)의 산장(山長)이 되어 『퇴계집(退溪集)』을 간행하였다. 1602년 유일로 천거되어 순릉참봉(順陵參奉)에 제수되었으나 몇 달 만에 사직하였다. 만년에 이르러 마을의 북쪽 송석대(松石臺)와 불고대(不告臺) 사이에 정사를 지어 독서하며 후진을 양성하였다.

[저술 및 작품]

문집으로 4권 2책의 『북애집(北厓集)』이 있다. 권1~2에는 사(辭), 부(賦), 시(詩)가 실려 있고, 권3은 서(書), 제문(祭文), 잡저(雜著) 등이 실려 있다. 권4는 이세택(李世澤)이 지은 행장, 제문, 만사(輓詞) 등이 있다. 잡저에는 향리의 풍속을 교화하기 위해 여씨향약(呂氏鄕約)과 이황의 향립약조(鄕立約條), 주자(朱子)의 월조회규(月朝會規)를 참고하여 만든 「향약(鄕約)」이 있다.

[묘소]

묘소는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양장산(羊場山)에 있다.

[상훈과 추모]

임진왜란 때의 공으로 선무원종훈(宣武原從勳)에 책록되었으며 사헌부감찰에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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