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3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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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景深 |
영어음역 | Ryu Gyeongsim |
이칭/별칭 | 태호(太浩),구촌(龜村),유경심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주부 |
[정의]
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풍산(豐山). 자는 태호(太浩), 호는 구촌(龜村). 고조할아버지는 하회(河回)에 정착한 류홍(柳洪)이고, 증조할아버지는 류소(柳沼)이며, 할아버지는 진사 류자온(柳子溫)이다. 아버지는 정랑 류공권(柳公權)이고, 어머니는 영양남씨(英陽南氏)로 진사 남팔준(南八俊)의 딸이다. 류성룡(柳成龍)이 그의 족질이다.
[활동사항]
류경심(柳景深, 1516~1571)은 1537년(중종 32)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544년(중종 39)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예문관검열과 홍문관정자를 지냈다. 1546년(명종 1) 승정원주서로 문과중시에 장원하였고, 1547년 예조좌랑과 홍문관수찬이 되었다. 같은 해 정미사화[丁未士禍: 문정왕후와 이기를 비방한 벽서(壁書)가 경기도 광주의 양재역에서 발견되어, 부제학 정언의(鄭彦懿)의 고발로 송인수(宋麟壽)·이약빙(李若氷) 등 20여 명이 처형당한 사건]에 연루되어 파직되었다.
1551년(명종 6) 다시 기용되어 회인현감 등을 거쳐 1558년(명종 13) 정주목사가 되었으나, 백성을 부역시켜 언전(堰田: 제방을 쌓아 만든 밭)을 개간하려는 윤원형(尹元衡)에 반대하다가 종성부사로 전출되었다. 1560년(명종 15) 광주목사가 되었고, 1568년(선조 1) 호조참판으로 성절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예조참판과 사헌부대사헌을 거쳐 1571년(선조 4) 병조참판·평안도관찰사가 되었다. 평안도관찰사로 재직하다가 병으로 상경 도중 장단에서 세상을 떠났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는 『구촌집(龜村集)』이 전한다.
[묘소]
묘소는 안동시 서후면 성곡리 능동마을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