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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택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1550
한자 金東澤
영어음역 Gim DongtaEk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한준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출신지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지도보기
성별
생년 1899년연표보기
몰년 1943년연표보기
본관 선성
대표경력 공명학원 교사

[정의]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본관은 선성(宣城)이다. 1899년(고종 36)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에서 출생하여 1943년 사망하였다.

[활동사항]

김동택은 1919년 안동의 3·1 만세 시위에 참가하였다. 안동 지역의 3·1운동은 1919년 3월 13일부터 27일까지 안동·예안·임동·임하·길안 등 11개 지역에서 14회에서 걸쳐 일어났다. 이 가운데 김동택은 3월 17일 예안면 1차 만세 시위와 18일에 일어난 안동면 2차 만세 시위에 참여했다가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예안면 1차 만세 시위는 이광호(李洸鎬)·이동봉(李東鳳) 등이 군중을 이끌고 면사무소 뒤편 선성산에 올라가 일제가 세운 ‘어대전기념비(御大典記念碑)’를 쓰러뜨리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1,500여 명의 시위 군중은 예안주재소로 몰려가 독립 만세를 불렀으며, 약 600명은 안동 시내로 들어가 3월 18일 안동면 2차 시위에 합세하였다. 이로 인해 김동택은 1919년 3월 24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형을 언도받았다.

이후 김동택은 서울로 상경하여 보성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오사카로 활동 무대를 옮겼다. 여기에서 그는 1932년 전협토건(全協土建) 오사카 지부에 가입, 활동하는 한편 천주일반노동조합(泉州一般勞動組合) 본부 상임위원으로 활약하였다. 또 공명학원(共鳴學院) 교사로 재직하면서 사상 잡지인 『동방평론(東方評論)』과 『삼천리(三千里)』의 오사카 지부를 설립·운영 하는 등 민족의식 고취에 박차를 가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활동으로 인해 1936년 12월 14일 다시 체포되어 1938년 7월 19일 오사카 지방재판소에서 징역 1년형을 얻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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