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7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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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墀鎬 |
영어음역 | Yi Jiho |
이칭/별칭 | 이지호(李之乎)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단천리 |
시대 | 근대/근대,현대/현대 |
집필자 | 류현정 |
성격 | 독립운동가|사회주의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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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단천리 |
성별 | 남 |
생년 | 1901년 |
몰년 | 1957년 |
본관 | 진성 |
[정의]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사회주의운동가.
[활동사항]
본관은 진성(眞城). 또 다른 이름은 이지호(李之乎)이다. 1901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단천리에서 태어났다. 이지호는 1919년 3월 17일 예안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여 시위를 전개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징역 1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1920년대에 들어와 그는 청년운동과 사회주의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925년 8월 안동청년동맹에 가입하여 집행위원으로 선출된 그는 10월에는 도산구락부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어 청년계몽과 민족의식 고취에 앞장섰다.
1928년 봄, 이지호는 조선공산당 안동야체이카 및 고려공산청년회 안동야체이카 책임자가 되어 당원의 교양과 야체이카 조직 및 선전, 재정 등과 관련한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야체이카협의회를 열었다. 같은 해 8월에는 제4차 조선공산당사건으로 안동청년동맹의 권태호와 함께 일본 경찰에 검거되기도 하였다.
1929년 8월 안동청년동맹 제2차 정기대회 임시의장 및 신간회 안동지회 대표위원으로 활동하던 그는 경북공산당사건에 연루되어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지호는 1930년 12월 27일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82년 대통령표창을 받았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