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22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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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祝壽儀禮 |
영어의미역 | Wish a Long Life Ceremony |
이칭/별칭 | 수연례,축수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
집필자 | 박동철 |
[정의]
경상북도 안동 지역에서 행해지는 60세 이후의 생일을 축하하는 의례.
[개설]
축수의례(祝壽儀禮)는 글자 그대로 장수를 축하하는 의례이다. 전통 사회에서부터 60세 이후의 생일을 기념하고 특별히 축하하는 의례를 가져 왔는데 이를 보통 축수(祝壽), 수연례(壽宴禮)라고 하였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 건강하고 무탈하게 장수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누구나 바라는 일일 것이다. 때문에 우리 선조들은 인생에 있어서 5가지 복이라는 수(壽)·부(富)·강녕(康寧)·유호덕(攸好德)·고종명(考終命) 등의 오복(五福) 중에 오래 사는 것을 뜻하는 수(壽)를 으뜸으로 쳐 왔다. 그러므로 전통 사회에서부터 지금까지 늙은 나이에 무탈하게 맞는 생일은 기뻐하고 축하 받아 마땅한 일인 것이다.
[연원 및 변천]
이만영(李晩永)은 『재물보(才物譜)』에서 “수연이란 사람이 태어나 60세가 지나면 잔치를 베풀어 이를 축하하는 것[壽過六十則設宴慶之]”이라고 했다. 60세라는 것은 한 갑자가 돌아서 생기는 특별하고도 긴 세월이다. 때문에 우리 선조들은 인생에 있어서 60이라는 숫자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였다. 첫돌로부터 60주년이 되는 회갑(回甲), 혼례를 치르고 60주년이 되는 회혼(回婚), 과거 급제로부터 60주년이 되는 회방(回榜)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예로부터 60세 이후의 인생은 하늘이 내린 여분의 삶이자 복이라고 생각하였다. 195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52.4세였다는 보건복지부의 통계 자료는 전통 사회에서 60세를 넘기는 것이 얼마나 드물고 또한 축하할만한 일이었겠는가를 짐작케 한다.
축수의례의 시작이자 대표적인 수연례인 61번째 생일은 시대에 따라 환갑(換甲)·환갑(還甲)·회갑(回甲)·화갑(華甲) 등 여러 가지로 불려왔다. 축수의례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인 『고려사(高麗史)』에서는 환갑(換甲)을 재앙이 많거나 액운이 끼여 운수가 사나운 해로 보고 특별히 조심하고 기피하도록 했다. 동시에 “환갑날에 장수를 축하했다[甲日祝壽]”는 기록도 있다.
조선시대에는 효를 가장 큰 가치로 삼는 유교문화가 정착하고 발달함에 따라 축수의례가 더욱 보편화되었다. 김성일(金誠一, 1538~1593)의 『학봉일고(鶴峯逸稿)』나 정홍명(鄭弘溟, 1592~1650)의 『기옹만필(畸翁漫筆)』,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의 『다산시문집(茶山詩文集)』 등 양반 개인 문집에서는 부모의 회갑연(回甲宴)에 관한 기록을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이는 부모의 생일을 축하하는 수연례가 효의 실천이라는 덕목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숙종실록(肅宗實錄)』의 1682년(숙종 8)에 의하면, “민간의 미천한 백성도 부모의 회갑이 되면 술을 거르고 음식을 장만하여 친족을 모아 축하한다”고 했다. 이 기록으로 보아 조선 중엽에는 양반뿐만 아니라 민간에서도 회갑잔치가 일반적으로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전통이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는 것이다.
한편, 60세 이후의 모든 생일들이 기념할 만한 것이지만, 그 중에서도 특별히 수연의 대상이 되는 생일은 다음과 같다. 육순(六旬, 60세), 회갑(回甲, 61세), 진갑(進甲, 62세), 고희(古稀, 70세), 희수(喜壽, 77세), 산수(傘壽, 80세), 미수(米壽, 88세), 구순(口脣, 90세), 백수(白壽, 99세) 등이다.
환갑잔치가 보편화되었던 조선시대 중엽 이래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형편이 크게 어렵지 않다면 이웃과 일가친지들을 초청하여 수연례를 여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과거보다 형편이 더 나아졌음에도 불구하고 환갑잔치를 하는 모습을 쉽게 찾아 볼 수가 없다. 경제적 사정은 좋아졌지만 환갑잔치는 하지 않는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가장 큰 이유는 평균 수명의 증가 때문일 것이다. 1950년대에는 평균 수명이 52.4세에 불과했지만, 2007년에는 여성은 82.4세, 남성은 75.7세가 되었다.
환갑이라는 것이 예전처럼 연로한 나이가 아니며, 보기 힘든 귀한 나이도 아닌 것이다. 이에 따라 요즘에는 환갑잔치보다는 환갑을 기념한 여행으로 효도 관광을 많이 가는 편이다. 대신에 환갑보다는 고령이라고 여겨지는 칠순잔치가 빈번해졌다. 또한 잔치를 하더라도 집에서보다는 뷔페 등의 전문 식당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으며, 예전과 달리 부조는 받지 않는다.
[절차]
안동시 풍산읍 수동2리 수동마을에 사는 주민 김석구(남, 67세) 모친의 환갑잔치 사례를 통하여 축수의례 절차를 살펴보고자 한다. 김석구의 모친은 1907년 생으로 1967년 음력 정월 열 하룻날 생일에 맞춰 친척·마을 사람을 모두 초청하여 성대하게 환갑잔치를 열었다. 슬하에 둔 3남 4녀 중 3남이 한 마을에 살았고, 그 외에도 많은 친척들이 같은 마을에 거주하고 있었다.
환갑잔치는 자택에서 열었으며, 아들들과 시집간 딸들, 그리고 친척들이 모두 모였는데 친척만 80여 명이 되었다. 또한 마을 사람들까지 거의 다 모여 큰 찬치가 벌어졌다. 음식으로는 돼지를 잡고 떡국을 넉넉하게 끓여 손님을 대접하였다. 술안주로는 해물과 가오리를 준비하고 술은 정종·소주·막걸리 등을 사용했다. 그 외에도 지짐과 시루떡을 했는데, 떡은 많이 하지 않았다. 과일은 주로 사과를 썼다.
부잣집에서는 소를 잡기도 하였지만, 이는 웬만한 집에서는 꿈도 못 꿀 일이다. 없는 집에서는 환갑 때 국수만 끓여 대접하기도 했는데, 형편이 좋지 않아 환갑잔치를 하지 못하는 집도 많았다. 환갑을 하는 집에서는 동네 사람이 모두 오기 때문에 떡국이라도 많이 끓여 한 사람도 못 먹는 사람이 없도록 하였다. 만약 잔치를 열었는데도 음식을 못 얻어먹은 사람이 있으면 그 집은 좋지 않은 소리를 들었다.
잔치에 오는 손님들은 집집마다 부조를 갖고 왔다. 당시 부조는 돈으로 하지 않고 주로 음식을 해 왔는데, 정종, 음료수, 막걸리, 묵, 감주 등이었다. 딸들은 어머니 환갑을 기념하여 털옷이나 배자 등 좋은 옷을 선물로 갖고 왔다.
환갑잔치에는 특별히 정해진 절차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당일 아침에 모친에게 절을 올리고, 점심식사를 마친 후 우스갯소리 잘 하는 집안 어른의 주재로 아들·며느리·딸·사위 등에게 앞으로 효도를 더 잘 하라고 다짐을 받으면서 붓으로 이들의 얼굴에 우스꽝스런 그림을 그리는 환칠놀이를 했다. 그리고 아들·사위 등이 모친을 등에 업고 집안을 몇 바퀴 돌았으며, 마을 사람들과 더불어 신명나게 놀았다.
[생활민속적 관련사항]
안동시 풍산읍 수동2리에서는 언제부턴가 환갑잔치를 하면 오래 살지 못한다고 하여 요즘은 환갑잔치를 하는 집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 대신 생일에 효도 관광을 하는 가정이 늘어났다. 특히 이 마을에서는 칠순이나 팔순까지도 금기시 하는 경향이 나타나 가족끼리의 간단한 식사로 잔치를 대신하는 경우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