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23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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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河回別神- |
영어의미역 | Village Tutelary Festival in the Hahoe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의례/제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
집필자 | 조정현 |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서낭당에서 5년 또는 10년마다 마을 공동으로 주민들이 지내던 마을굿.
[개설]
마을에서 행해지는 공동체 제의는 매년마다 행하는 동제와 그 대상 신을 위해 5년 또는 10년마다 행하는 부정기적인 별신굿이 있다. 별신굿은 성황신에 대한 대제(大祭)이며, 탈놀이는 별신굿의 부분인 오신행위에 해당한다. 모든 제의가 사회적 성격에 따라 그 특성이 달리 표현되듯이 별신굿도 지역적 특성에 따라 달리 표현되어진다.
1928년인 무진년은 성황신의 갑년(甲年)이기 때문에 별신굿을 행한 것이다. “별신굿을 보지 못하면 죽어서 좋은 데를 가지 못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명해서 무진년 하회별신굿을 할 때에는 인근 마을에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구경하였다고 한다.
탈놀이의 춤은 즉흥적이어서 남성의 경우는 경상북도 북부 지역의 특유한 「몽두리춤」을 추었으며, 여성의 경우는 오금을 비비는 「오금춤」을 추었고, 농악은 세마치장단만 쳤다. 성황신은 여신으로서 ‘무진생 성황님’이라고 불리는 17세의 의성김씨 처녀로 알려져 있다.
[연원 및 변천]
하회별신굿은 허도령의 전설과 함께 전해졌으며, 1928년을 마지막으로 행해진 후 중단되었다.
[절차]
섣달 보름날 별신굿의 책임자인 산주는 서낭당에 올라가서 별신굿을 할 것인지를 신에게 물어보며, 신탁이 내리면 어른들에게 알리고, 부정하지 않은 목수에게 ‘내림대’와 ‘서낭대’를 만들게 한다. 서낭대의 위에는 큰 주먹 정도의 당방울이 달려 있다. 이것은 탈과 함께 동사(洞舍)에 보관한다. 스무 아흐렛날 부정하지 않은 주민들 중에서 광대의 배역을 결정하는데, 일단 결정되면 거절하지 못하였다.
이들이 의상 및 기타 준비물을 갖추어 섣달 그믐날 동사에 모이면 보름동안 합숙을 하며 개인행동을 삼갔다. 그 기간 동안 이들은 ‘큰 광대’의 지도에 따라 춤과 재담 등을 연습한다. 연습을 하는 동안에는 동사 앞마당에서 놀거나 대가 집에서 초청하면 놀이를 한 후 다시 동사로 돌아와서 합숙하였다. 이 기간 동안 이들은 서로의 이름을 부를 수 없으며, ‘○○무당’이라고 부른다. 무당은 굿에만 참여하고 탈놀이에서는 장구 장단만 치면서 따라다니며, 광대들과 함께 합숙도 할 수 없다.
광대는 산주, 큰광대, 각시광대, 양반광대, 선비광대, 중광대, 할미광대, 부네광대, 초랭이광대, 이매광대, 백정광대, 주지광대(2명), 대를 메는 광대(2명 또는 그 이상), 청광대, 유사(2명), 무동꾼(2명) 등 20여 명이다. 이들 가운데 주지광대까지만 합숙을 한다. 농악대는 별도로 구성하지 않고 연행할 때 탈을 쓰지 않은 광대들이 교대로 악기를 치면서 놀이를 하며, 이 때 무당들이 가담하여 장단을 맞춘다.
하회별신굿탈놀이에서 사용하는 탈은 양반, 선비, 중, 할미, 초랭이, 백정, 이매, 각시, 부네 등 9개와 주지 2개이다. 탈의 뒤쪽은 검은 천이 꿰매져 있어서 덮어쓰기에 편리하다. 탈은 평소에 동사의 다락에 보관하지만, 별신굿을 행할 때는 섬에 넣어서 ‘청광대’가 관리한다. 섣달 그믐날이 되면 광대들은 서낭당에 다녀온 후 ‘큰광대’가 ‘술령수’ 하고 외치면 모든 광대들이 ‘우우’ 하고는 탈을 쓴다. 마을 주민들은 별신굿을 할 때 이외에는 탈을 볼 수 없으며, 부득이 보아야 할 경우에는 신에게 고하고 난 후 보아야 한다고 인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