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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호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500415
한자 萬戶
영어음역 Manho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경기도 안산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근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연도/일시 조선 전기
시행연도/일시 조선 전기
폐지연도/일시 1656년연표보기

[정의]

조선시대 경기도 안산 지역에 설치된 초지량영를 총괄하던 무관 직책.

[제정경위 및 목적]

조선시대 안산 일대 해안 경비를 위해 초지량영(草芝梁營)를 설치하였고, 이곳을 관장하는 직책으로 수군만호 1인을 배치하였다.

[관련기록]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을 비롯하여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중종 대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조선 후기에 간행된 『여지도서(輿地圖書)』 등에 관련 기록이 전한다.

[내용]

『세종실록지리지』 안산군조에 당시 안산군 서남쪽에 초지량만호를 설치하고, 이곳에 수군만호 1인을 배치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초지량만호에는 중대선 5척, 무군선(無軍船) 4척 등 총 9척의 배가 있었다. 수군은 623명이었으며, 그중 장번(長番) 수군이 8명이었다. 이후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초지량에 갯벌이 밀려와 대형 선박의 출입이 불가능해지자 사곶(沙串)으로 영을 옮겨 만호가 주둔하게 하였다.

1451년(문종 1) 7월 물이 깊어져 물가가 묻혀서 배를 댈 만하고 또 소릉(昭陵)과 가까워 수비의 필요성이 있다고 하여 다시 초지량으로 옮겼다. 1477년(성종 8) 6월에는 종전 영종포(永宗浦)에서 관장하던 소홀도(召忽島)와 이작도(伊作島) 두 섬에 있는 목장을 이관하여 관장하게 하였다.

[변천]

1656년(효종 7) 초지진(草芝鎭)을 강화도로 옮겼는데 안산의 초지진을 일초지(一草芝), 강화도의 초지진을 이초지(二草芝)라 불렀다. 그러나 『여지도서』에 “금폐(今廢)”로 기록된 것을 보면 이후 소멸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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