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5004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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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碩先生墓-神道碑 |
영어의미역 | The Grave and Memorial Stone of Ryu Seok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부곡동 산 5-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신대광 |
성격 | 묘|신도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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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일시 | 1655년[묘]|1690년[신도비] |
관련인물 | 유석|유시회 |
재질 | 석조 |
높이 | 128㎝[봉분]|212㎝[신도비] |
너비 | 370㎝[봉분] |
소재지 주소 |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부곡동 산 5-1 |
소유자 | 진주유씨 문중 |
문화재 지정번호 | 안산시 향토유적 제12호 |
문화재 지정일 | 1991년 11월 2일 |
[정의]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부곡동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유석의 묘와 신도비.
[개설]
유석[1595~1655]의 본관은 진주(晉州)이고, 자는 덕보(德甫), 호는 개산(皆山)이다. 정언 유격(柳格)의 손자로, 사옹원시정(司饔院寺正) 유시회(柳時會)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안동권씨로 권길(權吉)의 딸이다. 1613년(광해군 5)에 진사를 거쳐 1624년(인조 2)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사헌부·사간원 등의 관직을 역임한 뒤 강원감사를 역임하였다. 유석은 삼사(三司)의 요직을 두루 거쳐 벼슬이 강원도관찰사에 이르렀다. 좌찬성에 추증되었으며, 문직으로 『개산집(皆山集)』이 전해지고 있다.
[내용]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부곡동을 지나는 국도 42호선변 신갈-안산고속도로와 교차하는 지점에서 청문당을 지나 계속 올라가다 보면 광진굿당이 나오는데, 그 옆의 부곡동 산5-1번지에 있다. 유석의 묘소는 1655년(효종 6)에 조성되었고, 비는 1690년(숙종 16)에 세워졌다. 신갈-안산고속도로 건설 공사로 인해 원래의 위치에서 서북쪽으로 약 70m 이동된 상태이다. 묘의 크기는 봉분 128×370㎝, 비신은 212×96×38㎝이다. 묘역의 석물로는 상석·향로석을 비롯하여 동자석·문신석·망주석이 각각 한 쌍씩 있고, 장명등이 중앙에 있었으나 1980년대에 도난당하였다.
신도비는 조경(趙絅)이 짓고, 허목(許穆)이 전액과 글씨를 썼으며, 유석의 가계와 병자호란 당시의 상황을 살필 수 있다. 유석 선생 묘 및 신도비는 1991년 11월 2일 안산시 향토유적 제12호로 지정되었다. 2009년 현재 진주유씨 문중에서 소유, 관리하고 있다. 신도비의 원문과 번역문이 『경기금석대관』·『시흥금석총람』에 있으며, 비문 탁본이 안산문화원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