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5004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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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丁彦璧先生墓-墓碣 |
영어의미역 | The Grave and Monument of Jeong Eonbyeok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양상동 산 7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신대광 |
성격 | 묘|묘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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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일시 | 조선 후기[묘]|1702년[묘갈] |
관련인물 | 정언벽|정약용 |
높이 | 172㎝[묘]|287㎝[묘갈] |
소재지 주소 |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양상동 산 7 |
문화재 지정번호 | 안산시 향토유적 제9호 |
문화재 지정일 | 1991년 11월 2일 |
[정의]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양상동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정언벽의 묘와 묘갈.
[개설]
정언벽(丁彦壁)[1612~?]의 자는 계홍(季弘),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관찰사 정호선(丁好善)의 아들이며, 실학을 집대성한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1762~1836]의 5대 조부이다. 1630년(인조 8) 생원시에 합격하고 1644년(인조 22)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정자를 거쳐 박사(博士)를 지냈다. 이후 병조좌랑·사헌부지평·사간원헌납·홍문관교리 등을 역임하였다. 헌납 때 왕자 이징(李徵)[인조의 다섯째 아들 숭선군]의 죄가 논의되자 이를 변호하여 무사케 하였다.
[내용]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양상동 마을회관에서 북쪽 신갈-안산고속도로 쪽을 바라보면 산이 보이는데, 정언벽의 묘는 산 정상 부분에 있다. 정언벽의 묘는 조선 후기에 조성되었으나 정확한 연도는 알 수 없으며, 묘갈은 1702년에 세워졌다. 원래 묘는 선영인 현재의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에 있었으나, 1653년(효종 4) 아들 정시윤에 의하여 현재의 위치로 천장되었다. 묘갈은 묘의 남쪽 약 500m 지점에 있었는데, 1992년 9월 서해안고속도로 건설로 인하여 본래의 위치에서 동쪽으로 약 30m 떨어진 지점인 현 위치로 이전하였다.
묘의 봉분은 호석을 두른 높이가 172㎝, 너비가 540㎝이다. 묘갈의 높이는 287㎝, 너비는 75㎝, 두께는 27㎝이고, 묘표의 높이는 124㎝, 너비는 60㎝, 두께는 21㎝이다. 상석, 향로석, 동자석 2기, 망주석 2기가 있다. 정언벽 선생 묘 및 묘갈은 1991년 11월 2일 안산시 향토유적 제9호로 지정되었다. 정언벽 선생 묘 및 묘갈은 정약용 집안의 내력을 알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