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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500499
한자 豹菴遺稿
영어음역 Pyoamyugo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기도 안산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조준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시문집
관련인물 강세황
저자 강세황
간행연도/일시 조선 후기|1979년[영인본]연표보기
권수 6권
책수 3책
사용활자 필사본
간행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정의]

조선 후기 경기도 안산에서 활동한 강세황의 문집.

[개설]

강세황(姜世晃)[1712~1791]의 본관은 진주이고, 자는 광지(光之), 호는 첨재(忝齋)·산향재(山響齋)·박암(樸菴)·의산자(宜山子)·견암(繭菴)·노죽(露竹)·표암(豹菴)·해산정(海山亭)·홍엽상서(紅葉尙書) 등이다. 그의 대표적인 호인 표암은 태어나면서부터 등에 흰 얼룩무늬가 표범처럼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조선 후기 시(詩)·서(書)·화(畵)에 뛰어한 문인화가이자 관인이었다고 전하는데, 그림의 경우 화조(花鳥)·금충(禽蟲)을 비롯하여 산수·인물에 이르기까지 못하는 바가 없었다고 전한다. 그리고 김홍도(金弘道)·김응환(金應煥)이 일찍부터 그림의 비결을 지수(指授)받아 당대 쌍벽을 이루었다.

[편찬/발간 경위]

『표암유고』는 그 동안 후손에 의해 보관되어 오다 발견된 것으로, 1979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처음으로 영인, 간행하였다.

[서지적 상황]

6권 3책으로, 필사본이다.

[구성/내용]

권1~3에는 주로 시부(詩賦)가 수록되었다. 『표암유고』에 수록된 시는 대개 3기로 구분된다. 권1에 수록된 시는 안산 지역에서 거주하던 시기의 것이고, 권2는 거의 만년작으로 서울에서 생활할 당시에 창작된 것이다. 권3에 들어 있는 시의 경우 안산 지역에서 거주하며 해암(海巖) 유경종(柳慶種)[1714~1784]의 시에 차운(次韻)한 것이 절반에 가깝다. 또한 강세황이 1788년(정조 12) 연경에 부사(副使)로 파견되었을 때 그곳의 노정과 청국 인사들과 화운(和韻)[남이 지은 시의 운자를 써서 화답하는 시를 지음]한 것 등이 수록되어 있다.

강세황의 시는 사물을 정밀하게 관찰하여 풍부한 소재를 포착하고 있으며, 심미적인 감식력이 수반되어 조화 있는 시경(詩境)을 자아내고 있다. 자부(姉夫)인 참의 임정(任珽)강세황의 시 「두공부검무가화답(杜工部劒舞歌和答)」을 보고 “우리나라 근 100년간에 이만한 시가 없다.”고 극찬하였다고 전한다.

이밖에도 여러 화제(畵題)가 수록되어 있는데, 권1에는 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의 「수묵화죽도(水墨花竹圖)」가 들어 있고, 권2에는 만년인 1784년 3월 별지산(別芝山) 핍운정(逼雲亭)에서 그린 전경 등이 수록되어 있다. 권3에는 1788년 9월 금강산 유람 시 그린 학소대(鶴巢臺)에 제(題)를 쓴 것 등이 수록되었다.

권4는 서(序) 6편, 기(記) 11편, 설(說) 1편, 소인(小引) 2편, 서(書) 5편, 여어(儷語)·주련(柱聯)이 각각 1편 등 총 27편이 된다. 권5는 거의가 서화에 대한 제발(題跋)·제평(題評)이며, 그 밖에 찬(讚) 4편, 명(銘) 1편이 권말에 부기(附記)되어 있다.

권6에는 묘지명 2편, 묘갈명 5편, 제문 12편, 행장 2편, 그밖에 「표암자지(豹菴自誌)」 및 행장, 『경산집(經山集)』에 수록되어 있는 「표암시장(豹菴諡狀)」, 맨 끝에 「표암강판윤삼세입기사서(豹菴姜判尹三世入耆社序)」가 부록으로 추기(追記)되어 있다.

강세황은 자지(自誌)에서 왕희지(王羲之) 부자의 서법에 미불(米芾)·조맹부(趙孟頫)의 필체를 겸비, 체득하고 있다고 술회하고 있다. 그밖에 역대 명필의 모서(模書)·임서(臨書)·방서(倣書)를 비롯, 전세(傳世)되어 오는 법첩(法帖)의 진적을 가려내는 등 글씨에 대하여 폭넓은 식견을 서술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강세황의 시문집인 『표암유고』는 그의 학문과 사상 및 작품 세계를 알아보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특히 여기에는 54세 때 꼼꼼히 자화상을 첨부한 자전(自傳)인 「표옹자지」를 서술하여 남김으로써 그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또한 역대 최다를 기록하는 초상화들이 전해지고 있다.

이밖에도 그가 회화 수업을 한 교과서나 같은 『십죽재화보(十竹齋畵譜)』·『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고씨화보(顧氏畵譜)』 외에도 직접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당시화보(唐詩畵譜)』 등 중요한 화보류(畵譜類)가 남아 있다. 또한 화평(畵評)이라든가 제발(題跋)을 쓴 여러 작가의 작품이 전해지고 있어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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