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5006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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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士弼 |
영어음역 | Yi Sapil |
이칭/별칭 | 몽석(夢錫),수은(睡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안산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명우 |
[정의]
조선 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몽석(夢錫), 호는 수은(睡隱). 증조할아버지는 병조판서를 지낸 이계손(李繼孫)이고, 아버지는 이공려(李公礪)이며, 어머니는 전주이씨(全州李氏)로 종실인 청연수(淸淵守) 이숙의(李叔義)의 딸이다.
[활동사항]
이사필(李士弼)[1503~1556]은 1525년(중종 20) 생원이 되었고, 1538년(중종 33) 문과에 급제하였다. 예문관검열·승정원주서·성균관전적·형조좌랑·예조좌랑 등을 거쳐 세자시강원사서로서 세자(후에 인종)의 보양관(輔養官)을 지냈다. 1543년(중종 38) 전라도도사가 되었을 때는 감사 송인수(宋麟壽)가 신임하여 지방을 순시할 때 반드시 동행하였다. 이어 병조정랑·사헌부지평·홍문관수찬·함경도어사·사헌부장령·교리·의정부검상·의정부사인·사헌부집의 등을 역임하였다.
1548년(명종 3) 천추사(千秋使)로 중국에 다녀왔으며, 1550년(명종 5) 홍문관부교리로 있으면서 『중종실록(中宗實錄)』과 『인종실록(仁宗實錄)』을 편찬하는 데 편수관으로 참여하였다. 1554년(명종 9) 경상도 지역에 전염병과 기근이 심해지자 특별히 성주목사에 임명되어 기민 구제와 전염병 퇴치에 힘쓰다가 과로로 중풍에 걸려 사직하였다. 이듬해 의정부사인과 종부시정을 지냈으며, 중풍이 재발하여 세상을 떠났다.
이사필은 기품이 관대하고 진솔하였으며 소박하여 화려한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사헌부에 있을 때 대사헌 윤복(尹復)이 사람을 풍문으로만 듣고 천거하자 “속이 차지 않은 사람을 추천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므로 후일을 기다려도 늦지 않다.”라면서 반대하였다. 그러나 윤복이 자기가 추천한 사람이 일처리를 잘못하자 이사필의 안목을 높이 평가하며 그를 더욱 존경했다고 한다.
[묘소]
묘소는 안산시 상록구 일동에 있었는데, 신도시가 개발되면서 1979년 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영정리 산90번지로 이장되었다.
[상훈과 추모]
영의정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