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5007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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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涇 |
영어의미역 | Choe Gyeong |
이칭/별칭 | 사청(思淸),여청(汝淸),근재(謹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경기도 안산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우석 |
[정의]
조선 전기 안산 출신의 화가.
[가계]
본관은 탐진(耽津). 자는 사청(思淸)·여청(汝淸), 호는 근재(謹齋). 아버지는 안산군 출신 염부(鹽夫)였다.
[활동사항]
최경은 현재의 경기도 안산시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그림에 뛰어난 소질을 보여, 아이들과 함께 놀면서 소 채찍으로 땅을 그어 인물과 여마(驢馬)의 형상을 그렸는데, 매우 생기가 있어 촌부들이 모두 말하기를 “이 아이는 그림으로 출세할 것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도화원 생도가 되어서도 화업(畵業)에 정진하여 도화원의 최고직인 별제까지 올랐다.
성종 때 소헌왕후[세종의 비], 세조, 예종, 덕종[세조의 세자]의 어용(御容)을 성공적으로 그려 여러 차례 당상관(堂上官)에 제수되기도 하였으나 출신이 미천하다는 이유로 반대에 부딪쳐 취소되었다. 도화서의 동료인 안귀생(安貴生), 배련(裵連) 등과 함께 활약하였다.
[학문과 사상]
최경은 어용, 불상, 인물 등 주로 인물화에 뛰어나 당대에 ‘산수화엔 안견(安堅), 인물화엔 최경’으로 일컬어졌다. 말년에는 산수와 고목을 즐겨 그려 심묘한 경지에 들어갔으나 안견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평을 받았다. 마원(馬遠)의 산수인물화를 공부하였고, 남송 유송년(劉松年)과 북송 이공린(李公麟)의 영향을 받아 인물화를 연구하여 그 진수를 터득하였다고 한다.
[저술 및 작품]
현재 전하는 작품은 없으며, 그의 출세길을 열어 준 여러 어진의 제작과 「삼소도(三笑圖)」, 「청산백운도(靑山白雲圖)」, 「남원별서도(南原別墅圖)」, 「산수도(山水圖)」, 「초은도(招隱圖)」, 「채희귀한도(蔡姬歸漢圖)」 등 극소수의 작품 제목만이 전해질 뿐이다. 이러한 작품 제목에서 그가 초상화뿐만 아니라 산수인물화에도 정력을 기울인 것을 엿볼 수 있다. 일본에 최경의 이름이 적힌 「백의관음상(白衣觀音像)」이 전하나 진위 여부를 단정하기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