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5007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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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元成王后 |
영어의미역 | Wonseongwanghoo|Empress Wonseong |
이칭/별칭 | 원성태후(元成太后),용의(容懿),공혜(恭惠),영목(英穆),양덕(良德),신절(信節),순성(順聖),자성(慈聖),광선(廣宣)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왕족·호족 |
지역 |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장상동 |
시대 | 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김명우 |
성격 | 왕비|왕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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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장상동 |
성별 | 여 |
몰년 | 1028년 |
본관 | 안산 |
[정의]
고려 전기 안산 출신의 왕비.
[가계]
본관은 안산(安山). 아버지는 시중(侍仲)을 지낸 김은부(金殷傅)이고, 어머니는 인천이씨로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에 추증된 이허겸(李許謙)의 딸이다. 동생은 현종의 네 번째 비인 원혜왕후와 일곱 번째 비인 원평왕후이다. 현종과 사이에 덕종(德宗)과 정종(靖宗)·인평왕후(仁平王后)·경숙공주(景肅公主)를 두었다.
[활동사항]
원성왕후(元成王后)[?~1028]는 지금의 안산시 상록구 장상동에서 태어났다. 현종 초년에 거란군이 침입하여 개성이 함락당하자 임금은 전라도 나주까지 피란을 떠나야 하였다. 현종은 외적이 퇴각한 후 개성으로 돌아가다 공주에 묵게 되었는데, 당시 공주절도사이던 김은부는 임금을 극진히 영접하면서 딸로 하여금 어의(御衣)를 짓게 하였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현종은 김은부의 딸을 맞아들여 연경원주(延慶院主)로 삼았으며, 1018년(현종 9) 정종(靖宗)을 낳자 연경궁주(延慶宮主)로 고치고 예물을 내려 주었다. 1022년(현종 13) 연경궁주를 왕비로 책봉함으로써 현종의 세 번째 부인이 되었다.
[묘소]
명릉(明陵)에 장사지냈다.
[상훈과 추모]
1028년(현종 19) 왕후가 죽자 시호를 원성왕후라 하고 현종의 사당에 합사하였다. 덕종 즉위 후 원성태후(元成太后)로 추존되었고, 용의(容懿)·공혜(恭惠)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1056년(문종 10) 영목(英穆), 후에 양덕(良德)·신절(信節)·순성(順聖), 1140년(인종 18) 자성(慈聖), 1253년(고종 40) 광선(廣宣)이라는 시호가 거듭 추가되었다.
1022년 김은부는 추충수절창국공신(推忠守節昌國功臣) 개부의동삼사수사공(開府儀同三司守司空) 안산군개국후(安山郡開國侯)에 봉하였고, 이미 세상을 떠난 어머니는 안산군대부인에 추증하였다. 또 1024년(현종 15) 할아버지 김긍필(金肯弼)은 상서우복야(尙書右僕射) 안산현개국후(安山縣開國侯)에 봉하였고 할머니는 안산군대부인에 추증하였으며, 외할아버지 이허겸은 상서우복야에 추증하였고 소성현개국후(邵城縣開國侯)에 봉하였다. 1027년(현종 18)에는 왕후가 살던 옛 집의 이름을 장경궁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