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1000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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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中方浦 |
영어공식명칭 | Joongbang-po |
이칭/별칭 | 중방포(中防浦)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시설 |
지역 |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중방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임병조 |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중방리 곡교천 하류에 있던 포구.
[개설]
중방포(中方浦)는 곡교천의 가항종점(可航終點)[배가 운항할 수 있는 마지막 지점] 바로 아래쪽에 있던 포구이다. 중방포의 상류 쪽에는 신포[염티읍], 장구포[신창면] 등의 포구가 있었는데, 이 포구들은 가항종점 인근에 발달한 포구였다. 중방포가 있던 중방리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신포리와 중방리가 합쳐져 만들어진 마을이다. 신포리 건너편은 신창면 수장리인데, 수장리는 장구포리(長久浦里)와 수여리, 수남리 등이 합쳐져 만들어진 마을이다. 따라서 중방포는 곡교천의 포구 가운데 최상류에 있던 포구는 아니고 신포와 장구포 바로 아래쪽에 있던 포구임을 알 수 있다. 이 포구들은 모두 밀물 때 바닷물이 역류하여 곡교천의 수위가 올라가는 현상을 활용하여 발달할 수 있었다.
『대동여지도』에 의하면 곡교천의 가항종점은 고분다리[곡교(曲橋)]였다.『대동여지도』는 하천의 가항 구간을 쌍선으로 표현하였는데, 곡교천에서는 곡교까지가 쌍선으로 표현되어 있다. 고분다리는 지금의 아산시 배미동에서 염치읍 곡교리를 연결하던 다리였는데 중방포와는 2㎞ 정도 떨어져 있었다. 고분다리는 조선시대 이 지역의 대표적인 도로였던 수영로가 통과하는 중요한 다리였다. 따라서 수로와 육로가 만나는 적환지점이었으므로 중요한 교통 요지였다. 중방포는 고분다리에 인접한 포구였으므로 활용도가 높은 포구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대동여지도』에는 ‘중목포(中木浦)’로 표기되어 있는데 이는 판각 과정에서 ‘방(方)’이 ‘목(木)’으로 잘못 표기된 것이다.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판각하기 전 제작한 『청구도』에는 ‘중방포(中防浦)’로 표기되어 있어 역시 오늘날과 한자 표기가 다른데 어느 것이 정확한 표기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변천]
중방포가 있었던 곡교천 하류는 자유 곡류천으로 물길이 자주 바뀌어왔다. 일제강점기 초기에는 신포리[윗중방이] 바로 앞으로 물이 흘렀으나 1925년 큰 홍수가 나서 물길이 바뀌었다고 하는데 1970년대 지형도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1978년 지형도에는 중방리 앞에 하중도가 표시되어 있다. 이때까지도 구하도가 완전히 메워지지 않고 물이 흐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은 하천이 마을에서 500여m 떨어져 흐른다. 1979년 삽교천방조제가 완공된 이후 조수의 영향이 차단되었다.
[현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