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1005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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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燕岩山烽燧臺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충청남도 아산시 음봉면 동암리 산45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남상권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00년 7월 - 연암산 봉수대 충청남도 아산시에서 정비 및 복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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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충청남도 아산시 음봉면 동암리 산45 |
성격 | 봉수대 |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 음봉면 연암산 정상에 있는 조선시대 봉수대.
[개설]
연암산 봉수대가 있는 충청남도 아산시 음봉면 소동리, 동암리, 쌍룡리를 주변에 둔 연암산에는 가장 높은 두 개의 봉우리에 봉수대로 추정되는 흔적이 있으며, 서쪽 봉우리와 동쪽 봉우리는 동일한 능선으로 간격은 약 400m 정도이다.
서쪽 봉우리의 가장 높은 곳에 봉수대로 추정되는 흔적이 남은 곳의 유물은 산성 동벽과 남벽 그리고 봉수대로 추정되는 주변에서 삼국시대 및 고려시대로 추정되는 토기편과 고려시대 청자편 및 조선시대 기와편 소량이 발견되었다. 동산성에 매장되어 있던 유물에는 토기, 자기, 기와가 있는데 대부분 남문지 부근의 지표와 봉수대 주변에서 발견되었고, 이들 유물의 대부분은 조선시대 것으로 추정된다.
[변천]
연암산 봉수대는 2000년 7월 충청남도 아산시에서 정비 및 복원하였다.
[위치]
연암산 봉수대는 충청남도 아산시 음봉면 소동리, 동암리, 쌍룡리에 걸쳐 있는 연암산에 두 개의 높은 봉우리에 있는 봉수대로서, 좌표 삼각정의 번호[평택444], 경도 127도 03분 24초, 위도 36도 51분 35초 지점에 있다.
[현황]
연암서산성에 있는 서쪽 봉우리는 영인산을 제외하고는 주변 일대에서 가장 높아, 북쪽으로는 둔포면을 거쳐 멀리 경기도 평택의 평야까지 볼 수 있다. 또한, 동쪽으로도 충청남도 천안 시가지와 직산읍과 성거읍 일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그러나 남쪽은 구릉지에 가려져 있어 그다지 시야가 좋지 못하다는 단점이 있다.
동쪽 봉우리 또한 서쪽 봉우리와 전망이 비슷하다. 서봉과 달리 동봉은 원형의 봉수대 터가 남아 있는데, 동산성 내의 북쪽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석축으로 된 지름 20m의 타원형 방화벽 내부에 5기의 불을 피우는 시설인 연조가 세워져 있는데, 1홰는 평상시, 2홰는 적이 나타남을 알리는 신호, 3홰는 적이 국경 가까이에 왔음을 알리는 것이며, 4홰는 적이 쳐들어옴을, 5홰는 적과 싸움을 표시한다.
현재 봉수대는 주변 능선보다 약 3m가량 높은 곳에 솟아 있는 고지대에 축조되어 있는데, 이곳이 원래부터 높은 지형이었는지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여지도서(輿地圖書)』 기록에 의하면, 이곳에 봉수대가 설치, 운영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구전에 따르면, 서봉은 ‘헌봉오독’이라 하며 동봉은 ‘새봉오독’이라 칭한 것을 보면 서봉이 먼저 축조되었다가 넓은 평탄지가 있고 시계 확보가 더 용이한 동봉이 훗날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연암산 봉수대는 제5횃불의 직봉으로, 전라남도 순천에서 시작하여 남해안을 따라 목포로 가서 해안을 따라 군산 옥구에 이른다. 여기에서 다시 내륙으로 들어와 부여, 공주 쌍령산, 천안 태학산, 아산 연암산, 직산현 망해산으로 이어지고 최종 목적지는 한양 목멱산으로 하였다.
[의의와 평가]
연암산 봉수대는 왜구가 남해안을 침입했을 때 가장 신속하게 연락을 취할 수 있는 통신수단이었다. 아산은 서해안의 전략적 요충지여서 많은 산성이 있었다. 이런 산성을 연결해 문화 탐방지로 개발할 필요성이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