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1005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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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姜鶴年墓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충청남도 아산시 탕정면 매곡리 산61-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민규 |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 1585년 - 강학년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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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 1647년 - 강학년 사망 |
건립 시기/일시 | 1681년 - 강학년 묘비 건립 |
이전 시기/일시 | 1910년경 -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동화2리 분토골의 종중 묘역에서 충청남도 아산시 탕정면 매곡리 강감산으로 이전 |
보수|복원 시기/일시 | 2002년 - 강학년 묘비 비각 건립 |
현 소재지 | 강학년 묘비 - 충청남도 아산시 탕정면 매곡리 산61-1 |
원소재지 | 강학년 묘비 -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동화2리 산2-1 |
성격 | 묘비 |
양식 | 비좌이수 |
관련 인물 | 강학년 |
재질 | 대리석|화강석 |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 탕정면 매곡리에 있는 강학년의 조선 후기 묘비.
[개설]
강학년(姜鶴年)[1585~1647]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자구(子久), 호는 복천(復泉)·자운(紫雲)이다. 벼슬은 장령(掌令)을 지냈으며, 아들 강호(姜鎬)[1605~1671]가 강원도관찰사가 되어 대사헌(大司憲)에 증직되었다. 회덕 잔골[자운동, 현재 대전광역시 대덕구 석봉동]에서 태어났는데 이곳은 고조부 강문한(姜文翰)[1464~1547]이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동화리에서 분가하여 이주한 뒤 진주강씨 세거지가 되었다. 강학년의 후손은 스스로 복천공파로 칭하며, 대전과 아산 일대에 거주하고 있다.
[건립 경위]
강학년 묘비의 정확한 건립 연대는 확인되지 않는다. 손자인 강세구(姜世龜)[1632~1703]가 홍주목사(洪州牧使), 손녀사위인 목림유(睦林儒)[1634~?]가 해주목사(海州牧使)로 재직하였던 시기와 음기(陰記)를 허목(許穆)[1595~1682]이 짓고 썼다는 점 등으로 미루어보아 1681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위치]
강학년 묘비는 충청남도 아산시 탕정면 매곡리 산61-1에 있다. 곡교천로의 갈산1교차로에서 북쪽으로 갈산교를 건넌 뒤 오른쪽[동쪽]으로 곡교천 제방 길을 따라 600m 정도 가서 북쪽 샛길로 100m 정도 올라가면 나지막한 강감산 서쪽 기슭에 강학년 묘비가 있다.
[형태]
강학년 묘비는 네모난 받침돌[方趺], 비신(碑身), 이수(螭首)로 이루어진 비좌이수형 비석이다. 화강석으로 만든 받침돌은 윗면 네 변의 각을 죽이고 그 외에는 문양이 조각되지 않았다. 대리석으로 만든 비신과 이수는 하나의 석재로 제작되어 있다. 이수는 앞면에 용 두 마리, 뒷면에 용 한 마리를 조각하였다. 앞면에 비문이 해서(楷書)로, 뒷면에 음기가 새겨져 있다. 음기는 끝에 ‘양천 허목 저(陽川許穆著)’라고 새겨져 있어서 허목이 지은 것임을 알 수 있으며, 글씨도 허목 특유의 행서(行書)이다.
[금석문]
증가선대부사헌부대사간 행조산대부 수사헌부장령 겸 성균관사업강공지묘(贈嘉善大夫司憲府大司諫行朝散大夫守司憲府掌令兼成均館司業姜公之墓)
정부인 한산이씨 부좌(貞夫人韓山李氏祔左)
[현황]
강학년 묘비는 묘와 함께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동화2리 분토골의 종중 묘역에 있었는데 약 100년 전에 현 위치인 강감산으로 옮겨졌다. 이때 묘비를 묘 앞에 세우지 않고 지형에 따라 진입로가 있는 서쪽 80m 정도 지점에 세워 신도비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대리석 재질의 비신과 이수가 약간 풍화되어 있고 돌이끼도 조금 끼어 있으며, 2002년에 비각을 건립하여 비를 보호하고 있다.
강학년 묘비 옆에는 2011년에 세운 비좌개석 형태의 묘비가 있는데, 앞면 왼쪽에 ‘유인안동김씨부우(孺人安東金氏祔右)’라 새겨져 있다. 연기군 전의면[현재 세종시]에 있던 후배(后配)[후부인] 안동김씨의 묘를 2011년에 이장하여 추가로 합장하고 묘에 호석을 만들어 둘렀다.
원래 강감산에는 강학년의 묘만 있었는데, 회덕 잔골[자운동], 현재 대전광역시 대덕구 석봉동에 있던 강학년의 증조할아버지 강인(姜璘), 할아버지 강운상(姜雲祥), 아버지 강첨(姜籤)[1559~1611]의 묘를 2018년에 이장하여 강학년의 묘 바로 뒤에 왼쪽부터 나란히 놓았다.
[의의와 평가]
1681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하는 강학년 묘비는 1683년에 건립된 이시방(李時昉)의 묘표(墓表)와 같은 형태로 양식적 연관성이 있다. 강학년의 아들 강호의 묘는 송악면 동화리에 있는데, 아버지 강학년의 묘비 양식을 따라 1903년에 묘비를 세웠다. 강학년의 묘비는 비신과 이수가 하나의 대리석으로 조성되었으며, 이수의 조각 솜씨가 빼어나서 조형미가 있는 아산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더불어, 허목은 1680년 경신환국(庚申換局)[1680년(숙종 6) 남인이 대거 실각하여 정권에서 물러난 사건]으로 삭탈관작되어 음기를 쓸 당시 아무런 직함을 쓰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며, 강학년 묘비는 허목의 최만년(最晩年) 작품으로도 가치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