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1007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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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沈龜齡 |
영어공식명칭 | Sim Guryeong |
이칭/별칭 | 천석(天錫),병담(屛潭)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충청남도 아산시 선장면 신성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명진 |
출생 시기/일시 | 1350년 - 심구령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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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398년 - 심구령 제1차 왕자의 난 때 박원길, 정도전 등을 제거함 |
활동 시기/일시 | 1400년 - 심구령 제2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을 호종하여 좌명공신 4등에 책록 및 풍천군에 봉해짐 |
몰년 시기/일시 | 1413년 - 심구령 사망 |
거주|이주지 | 거주지 - 서울특별시 |
묘소|단소 | 심구령 묘 - 경기도 광주시 남종면 검천리 |
사당|배향지 | 심구령 부조묘 - 충청남도 아산시 선장면 신성리 |
성격 | 무관 |
성별 | 남 |
본관 | 풍산 |
대표 관직|경력 | 판공안부사|동지의흥부사 |
[정의]
조선 전기 충청남도 아산에 부조묘가 건립된 무신.
[개설]
심구령(沈龜齡)[1350~1413]은 조선 건국에 공헌한 무신으로 충청남도 아산시 선장면 신성리에 부조묘(不祧廟)[불천위(不遷位) 제사의 대상이 되는 신주를 둔 사당]가 건립되었다.
[가계]
심구령의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천석(天錫), 호는 병담(屛潭)이다. 아버지는 전농시사(典農寺事) 심승경(沈承慶)이다. 심보(沈寶), 심실(沈實), 심치(沈寘) 등 아들 셋을 두었다.
[활동 사항]
심구령은 활을 잘 쏘고 말을 잘 몰아 오랫동안 이방원(李芳遠)[태종]을 시종(侍從)하였다. 1398년(태조 7) 제1차 왕자의 난과 1400년(정종 2) 제2차 왕자의 난이 일어났을 때 이방원을 도와 공을 세워 좌명공신(佐命功臣) 4등에 책록되었고 풍천군(豊川君)에 봉해졌다. 여러 벼슬을 거쳐 판공안부사(判恭安府事), 동지의흥부사(同知義興府事)에 이르렀다. 심구령은 가난하고 지체가 변변하지 못한 집안에서 태어나 부귀(富貴) 현달(顯達)하였으나, 항상 겸손하여 예절로서 선비를 대하였다. 『태종실록』에 1413년(태종 13) 음력 6월 20일에 심구령이 사망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묘소]
심구령의 묘소는 경기도 광주시 남종면 검천리의 작은 야산에 있다. 부조묘는 충청남도 아산시 선장면 신성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심구령이 사망하자 태종의 정비(靜妃)와 세자(世子)가 와서 조문하였다고 한다. 이때의 정비는 세종의 모후인 원경왕후(元敬王后)이고, 세자는 양녕대군(讓寧大君)이다. 시호를 정양(靖襄)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