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8006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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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華植 |
이칭/별칭 | 김우동(金友東)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청소면 진죽리 677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정을경 |
출생 시기/일시 | 1866년 7월 3일 - 김화식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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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896년 - 김화식 제천의병 활동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899년 - 김화식 『소의신편(昭義新編)』 발간 |
몰년 시기/일시 | 1943년 4월 2일 - 김화식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5년 - 김화식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
출생지 | 충청남도 보령시 청소면 진죽리 677 |
활동지 | 충청북도 제천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제천의병 참가 |
[정의]
구한말에 활동하였던 충청남도 보령 출신의 의병이자 독립운동가.
[개설]
김화식(金華植)[1866~1943]은 충청남도 보령시 청소면 진죽리 출신으로,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유인석(柳麟錫)[1842~1915]이 제천의병을 일으키자 이에 참여하여 의병 활동을 전개한 인물이다.
[활동 사항]
1894년 청일전쟁이 발생한 이후 일본의 한반도 침략이 가속화되었고, 변복령(變服令)과 을미사변, 단발령을 계기로 전국적으로 의병들이 항일을 외치면서 봉기하게 되었다. 김화식은 이항로(李恒老)[1792~1868]를 연원으로 하는 화서학파로서, 항일 투쟁에 앞장선 유인석 의병장의 제자이다.
유인석이 제천의병을 선도하자, 당시 보령 지역에 머물고 있던 김화식은 소식을 접하고 제천의병에 가담하여 항일 투쟁에 적극적으로 앞장섰다. 제천의병 이후 유인석은 서북 지방을 경유하여 서간도에 머물렀는데, 김화식은 유인석을 따라 서간도로 건너가 함께 의를 지키는 ‘수의(守義)’ 생활을 하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유인석과 김화식은 서간도를 근거지로 하여 항일 세력을 확대하였으며, 국내에서도 항일 투쟁과 국권 회복 도모를 위한 동지들을 모으려고 귀국하였다.
귀국 이후 김화식은 유인석 의병장과 행보를 함께하는 등 국내와 서간도에서 의병 활동에 적극적이었다.
[저술 및 작품]
김화식은 귀국 후 이정규(李正奎), 백삼규(白三圭), 김형걸(金瀅杰) 등 동문들과 함께 유인석을 비롯한 화서학파 인물들의 의병 투쟁 내력과 거의(擧義)[의병을 일으킴] 이념 문건들을 정리한 『소의신편(昭義新編)』을 1899년 8권 4책으로 발간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