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8008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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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川王臺寺磨崖佛 |
이칭/별칭 | 대천 왕대사 마애불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유물/불상 |
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절길 44[내항동 767-10] |
시대 |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정성권 |
문화재 지정 일시 | 1990년 9월 27일 - 대천왕대사마애불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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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장처 | 왕대사 - 충청남도 보령시 절길 44[내항동 767-10] |
성격 | 불상 |
재질 | 화강암 |
크기(높이) | 386㎝[높이]|160㎝[폭]|1㎝[선의 깊이] |
소유자 | 왕대사 |
관리자 | 왕대사 |
문화재 지정 번호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17호 |
[정의]
충청남도 보령시 내항동 왕대사 서쪽 암벽에 새겨진 고려 후기에서 조선 초기 사이에 조성된 마애불.
[개설]
왕대사(王臺寺)는 보령 시내를 관통하는 대천천과 서해가 만나는 지점에 얕게 솟아난 높이 123.9m의 왕대산(王臺山) 정상부 능선 바로 아래에 있다. 왕대사는 근래 새롭게 조성된 대웅전과 요사채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경순왕이 고려 왕건에게 신라의 천년 사직을 넘기고 돌아오다 머물렀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대천왕대사마애불(大川王臺寺磨崖佛)은 왕대사의 서쪽 화강암 암벽에 음각으로 새겨진 마애불 입상이다. 마애불은 심하게 풍화되어 있어 불상을 선명하게 관찰하기는 어럽다. 1990년 9월 2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형태]
대천왕대사마애불의 머리 주변에는 2줄의 두광(頭光)이 확인되며 머리 위에는 육계(肉髻)[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가 낮게 조각되어 있다. 귀는 어깨 위까지 길게 내려오며 목에는 삼도(三道)[불상 목 주위에 표현된 3개의 주름으로, 생사(生死)를 윤회하는 인과(因果)를 나타내며 혹도(惑道) 또는 번뇌도(煩惱道), 업도(業道), 고도(苦道)를 의미함]의 흔적이 남아 있으나 마모가 많이 진행되어 있다.
상체 역시 마모되어 있어 옷 주름이 잘 보이지 않는다. 왼손은 가슴 부위에 대고 있으며 오른손은 명확하게 보이지 않으나 두 손을 잡고 있는 듯이 보인다. 허리 아래에는 팔에서 흘러내린 U자 형태의 옷 주름이 보이며, 손 아래로는 수직의 옷 주름이 아래로 흘러내린다. 다리 부분은 암반이 일부 결락되어 있으며 마모가 진행된 부분도 있어 확인되지 않는다. 남아 있는 불상의 높이는 386㎝, 폭은 160㎝이며, 선의 깊이는 1㎝ 내외이다.
[특징]
대천왕대사마애불은 상호(相好)의 눈·코·입 등이 마모되어 있으며, 옷 주름 역시 마모가 심해 불상의 조성 시기를 판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얼굴 조각이 평면적이며 양어깨에 모두 옷을 걸친 통견(通肩) 형태의 법의(法衣)를 착용하고 있으면서도 다리 부분에서 확인되는 옷 주름은 통일 신라 시대나 고려 시대 통견 형태의 법의를 착용한 일반적인 불상의 옷 주름과 차이가 있다. 이러한 형태로 옷 주름이 조각된 점은 조성 시기를 통일 신라 시대나 고려 전기 이전으로 올려보기 어렵게 한다.
일반적으로 통일 신라나 고려 전기에는 마애불이 고부조(高浮彫)[두껍게 드러나게 한 돋을새김]로 조각되거나 선각(線刻)으로 조각되더라도 상대적으로 음각선의 깊이가 깊게 조각된다. 이에 반해 예산 장신리 마애불상(禮山 長信里 磨崖佛像), 공주 일락산 마애지장보살입상(公州 日落山 磨崖地藏菩薩立像)과 같이 조선 초기 마애불의 경우 마애불의 음각선이 매우 얕게 조각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점을 고려한다면 대천왕대사마애불은 고려 후기나 조선 초기에 제작된 마애불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