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8012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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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石藍詩稿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사현 |
저술 시기/일시 | 1884~1895년 - 『석람시고』 발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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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시문집 |
저자 | 김광제 |
규격 | 23.0㎝[세로]|19.8㎝[가로] |
[정의]
개항기 충청남도 보령 출신의 독립운동가인 김광제의 시문집.
[개설]
『석람시고(石藍詩稿)』는 충청남도 보령 출신의 독립운동가인 김광제(金光濟)[1866~1920]가 1884년부터 1895년까지 지은 시를 모아 엮은 시문집이다.
[저자]
김광제는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평리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경주(慶州), 초명은 홍제(弘濟), 호는 동양자(東洋子), 시호는 석람(石藍)이다.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 첨정에 이르렀다. 1896년 이세영(李世永)[1869~1938], 황재현(黃載顯)[1848~1903] 등과 함께 남포에서 의병을 일으켜 남포성을 공격하였다가 실패하고 서울로 빠져나갔다. 1905년에 배일 및 내정 부패를 규탄하는 상소문을 올렸다. 1907년 대구 지역 내 출판사인 광문사(廣文社) 사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부사장 서상돈(徐相敦)[1850~1913]과 함께 ‘국채일천삼백만환보상취지서(國債一千三百萬珤報償趣旨書)’라는 격문을 전국적으로 배포하여 국채보상운동을 추진하였다.
1919년 3·1운동 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1920년 3·1운동 1주년을 맞이하여 유학생들과 제2의 독립선언서를 작성하여 국내외에 배포하고 제2의 3·1운동을 일으키려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사망 후 마산에 안장되었으나, 1927년 고향인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평리로 이장하였고, 이곳에 1947년 추모비를 세우고 추모 행사를 거행하였다. 1982년 대통령 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형태/서지]
『석람시고』는 필사본으로, 크기는 세로 23.0㎝, 가로 19.8㎝이고 22면이다.
[구성/내용]
『석람시고』에는 1884년에서 1895년까지의 시 50수를 수록하고 있으며, 권수(卷首)에 을미년에 지은 자서(自序)를 수록하고 있다. 시는 서정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시가 많으며, 벼슬길에 나아가기 전의 방랑하는 모습, 자연에서 유유자적하는 모습, 항일 투사로서 시대의 아픔을 나타낸 시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석람시고』는 항일 운동가로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가 떠난 김광제의 젊은 시절 시인으로서의 모습 등 다양한 인간적 면모를 파악할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