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6001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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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百濟 |
영어음역 | Baekje |
영어의미역 | Baekje kingdom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기도 부천시 |
시대 | 고대/삼국 시대/백제 |
집필자 | 배성수 |
[정의]
삼국시대 부천 지역을 관할한 고대 국가.
[개설]
기원전 18년에 건국하여 660년 신라에 멸망한 고대 국가로, 삼한의 하나인 마한 세력을 기반으로 한강 유역에서 성장하여 한반도 중부와 서남부 지역까지 세력을 떨쳤다. 부여족 계통의 세력인 온조(溫祚) 집단에 의해 건국되어 북으로 고구려, 동으로 신라와 대립하였다. 백제는 4세기 중엽 근초고왕 때 중앙집권 체제가 확립되면서 활발한 영토 전쟁을 벌여 황해도에서 전라도에 이르는 한반도 서부 지역을 완전히 장악하기도 하였다. 이후 고구려의 팽창 정책에 따라 도읍을 한성에서 공주, 다시 부여로 옮겼고, 660년 나당연합군과의 전투에서 패하여 멸망하였다.
[명칭유래]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백제의 시조 온조가 졸본부여에서 남하한 뒤 기원전 18년에 한강 유역에 나라를 세우고, 10명의 신하로부터 도움을 받았으므로 십제(十濟)라 하였다. 그 후 미추홀로 떠났던 비류가 죽자 남아 있던 세력들이 백성과 영토를 십제에 바쳤고 온조는 국호를 백제로 고쳤다.
이와 같은 명칭의 변화는 한자에 입각한 해석으로 생각된다. 나라가 성장하면서 ‘십(十)’에서 ‘백(百)’으로 바뀌었다는 것은 ‘백’을 염두에 두고 ‘십’을 지어낸 듯하다. 한편, 중국의 사서인 『삼국지(三國志)』에 따르면 마한의 54개 소국 가운데 백제국(伯濟國)이 있어 백제라는 명칭이 마한의 백제국에서 왔음을 알게 해준다.
[형성 및 변천]
백제는 기원전 18년 부여족 계통의 고구려 유민인 온조 세력에 의해 현재의 서울 지역을 중심으로 성립되었다. 건국 초기에는 직산에 있는 목지국 중심의 마한연맹체의 한 구성원이었다. 그 후 백제는 마한의 여러 소국들을 병합하면서 한강 유역의 새로운 지배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이때 부천 지역도 백제의 영역에 이미 속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인천에 기반을 두었던 비류가 세웠던 미추홀이 훗날 백제에 복속되었기 때문에 위례성과 미추홀 사이에 있던 부천 지역은 자연스럽게 백제의 영역에 포함되었을 것이다.
260년(고이왕 27) 관제를 정비하여 고대 국가의 기반을 갖추었다. 4세기 중반 근초고왕 때에는 중앙집권체제를 완성하여 그 토대 위에서 활발한 정복 활동을 벌여, 북으로는 황해도 신계, 남으로는 전라도 지역까지 백제 영토가 되었다. 그러나 이후 백제는 고구려의 팽창 정책으로 군사적 압박을 받다가 475년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을 받아 수도 한성(漢城)이 함락되고 개로왕이 죽는 등 시련을 겪었다. 당시 부천 지역도 한강 유역의 다른 지역과 함께 고구려 영토가 되었다.
538년(성왕 16) 사비로 수도를 옮긴 뒤 백제는 관제를 정비하는 등 중흥을 꾀하면서 신라와 연합하여 고구려에 빼앗긴 한강 유역을 회복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553년(성왕 31) 신라가 나제동맹을 깨고 한강 하류 지역을 공격하면서 일어난 전투에서 백제가 패함으로써 왕권이 급격히 쇠퇴하였다. 7세기 중반 의자왕 재위 때에는 신라와 대립하면서 무리한 전쟁을 일으켜 국력이 더욱 약해졌으며, 660년(의자왕 20) 나당연합군의 공격에 효율적으로 대응하지 못하여 마침내 멸망하고 말았다.
[관련기록]
『삼국지』 「위서」동이전 한조(韓條)에 마한 50여 국의 이름을 열거하는 가운데 백제국에 관한 기록이 있는데, 그 기사는 다음과 같다. “한은 대방의 남쪽에 있는데, 동쪽과 서쪽은 바다로 한계를 삼고, 남쪽은 왜와 접경하니 면적이 사방 4,000리쯤 된다. (한에는) 세 종족이 있으니 하나는 마한, 둘째는 진한, 셋째는 변한인데, 진한은 옛 진국이다. …… (마한의 제국으로는) 원양국·모수국·상오국 …… 백제국 등 모두 50여 국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