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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응절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600928
한자 伐應節里
영어공식명칭 Beoreungjeolli|Beoreungjeolli Village
이칭/별칭 벌말,벌골[坪村],안마을,안동네,절골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기도 부천시 역곡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병철박경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벌응절리 - 경기도 부천시 역곡동
성격 마을

[정의]

경기도 부천시 역곡동에 있는 자연 마을.

[개설]

벌응절리는 벌말, 벌골[坪村], 절골, 안마을, 안동네라고도 한다.

[명칭 유래]

죽산박씨 문중이 약 200여 년 전에 이곳에 정착하면서 ‘벌골’이란 마을 이름을 부르게 된 것을 일인(日人)들이 발음상 편리한 점을 따 벌응절리(伐應節里)로 동명(洞名)을 지었다는 설이 있다. 또 하나는 벌응절리는 벌말·벌골에 자리 잡은 마을이란 의미라는 의견이다. 세 번째는 역곡동 안동네로 일명 벌골 또는 절골이라고 부른다. ‘절골’이라 부르게 된 것은 옛날 이곳에 봉응사(峰應寺)란 절이 있었는데 봉(峰)은 우리 말로 벌(伐)이고 사(寺)는 우리 말로 절(節)이기 때문에 붙여졌다는 설이다.

네 번째는 왜군의 침략에 응전하여 왜군을 쳤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임진왜란 때 사래리에 사는 박진이 이곳 뒷산인 둔대산[현 춘덕산]에서 의병 200여 명을 거느리고 전투를 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신빙성이 있다고 주장하였으나 사료로 밝힐 수 있는 근거는 없다. 최근에는 벌응절리에서 ‘벌’은 개간되지 않은 상태의 벌판을 의미하며, ‘응절리’는 언저리를 말하므로, 벌판의 끝자락에 위치한 마을이라는 뜻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형성 및 변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1]에는 옥산면(玉山面) 벌응절리로 되어 있다. 『부천예총』 창간호[1977]에서는 옛 농촌진흥원 서쪽에 있는 안마을로 벌말, 벌골로 기록하고 있다.

[자연환경]

서쪽에는 멀미의 벌응절리에서 부르는 말인 둔대산이 있고, 동쪽으로 둔대골이 있다.

[현황]

벌응절리 안골 맞은편에는 역곡중학교, 역곡고등학교가 있고 남쪽에는 부천역곡초등학교가 있다. 현재는 도시 계획이 진행되고 있으며 주변에는 아파트 단지가 많이 들어서 있다. 현재 둔대골 골짜기 아래는 그린벨트[녹지대]로 묶여 개발이 제한되어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4.01.08 본문내 항목명 변경 역곡시장->역곡북부시장
2011.01.02 벌응절리 <참고문헌> <문헌><서명 검색어='조선지지자료'>『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서명>(<출판사항>조선총독부, 1919</출판사항>)</문헌> <문헌><서명 검색어='부천시사'>『부천시사』</서명>(<출판사항>부천시사편찬위원회, 2002</출판사항>)</문헌> <문헌>한도훈, 부천의 땅이름 이야기(부천문화원, 2001)</문헌>
2010.12.16 벌응절리 1) <지역>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역곡동</지역> --> <지역>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역곡동 역곡로 73번 길, 역곡로 85번 길 일대</지역> 2) <소표제>[정의]</소표제> <문단><지명 검색='1' 검색어='역곡동'>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역곡동</지명>에 있던 자연 마을.</문단> --> <문단><지명 검색='1' 검색어='역곡동'>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역곡동</지명>에 있는 자연 마을.</문단> 3) <소표제>[명칭유래]</소표제> <문단><서명 검색='0' 검색어=''>『조선지지자료』</서명>에는 <지명 검색='1' 검색어='벌응절리'>벌응절리(伐應節里)</지명>로 표기되어 있다. 한자대로 풀이를 하면 ‘치고 응하는 마을’, 즉 싸움에 대응해서 치고 응하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지명 검색='1' 검색어='벌응절리'>벌응절리</지명> 뒷산을 둔대라고 하는 데, 이 둔대를 군대가 주둔한 곳이라고 해석을 해서 군대가 치고 응하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지명 검색='1' 검색어='벌응절리'>벌응절리</지명>에서 ‘벌(伐)’은 개간되지 않은 상태의 벌판을 의미하며, ‘응절리’는 언저리를 말하므로, 벌판의 끝자락에 위치한 마을이라는 뜻이다.</문단> --> <문단><서명 검색='0' 검색어=''>『조선지지자료』</서명>에는 <서명 검색='0' 검색어=''>옥산면</서명>에 속하는 <지명 검색='1' 검색어='벌응절리'>벌응절리(伐應節里)</지명>로 표기되어 있다. 한자대로 풀이를 하면 ‘치고 응하는 마을’, 즉 싸움에 대응해서 치고 응하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지명 검색='1' 검색어='벌응절리'>벌응절리</지명> 뒷산을 둔대라고 하는 데, 이 둔대를 군대가 주둔한 곳이라고 해석을 해서 군대가 치고 응하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지명 검색='1' 검색어='벌응절리'>벌응절리</지명>에서 ‘벌(伐)’은 개간되지 않은 상태의 벌판을 의미하며, ‘응절리’는 언저리를 말하므로, 벌판의 끝자락에 위치한 마을이라는 뜻이다. <지명 검색='1' 검색어='벌응절리'>벌응절리</지명> 앞에서 <지명 검색='1' 검색어='역곡중학교'>역곡중학교</지명>, <지명 검색='1' 검색어='역곡시장'>역곡시장</지명>을 거쳐가는 감배들이 있어서 그걸 증명해준다.</문단> 4) <소표제>[자연환경]</소표제> <문단>서쪽에는 <지명 검색='1' 검색어='둔대산'>둔대산</지명>이 있고, 동쪽으로 난 <지명 검색='1' 검색어='둔대골'>둔대골</지명> 아래에 있었다. 지금은 <지명 검색='0' 검색어=''>안양천</지명>이 <지명 검색='1' 검색어='벌응절리'>벌응절리</지명> 앞까지 밀려들어 오고 있다. 현재 <지명 검색='1' 검색어='둔대골'>둔대골</지명> 골짜기 아래는 그린벨트(녹지대)로 묶여 개발이 제한되어 있다.</문단> --> <문단>서쪽에는 멀미의<지명 검색='1' 검색어='벌응절리'>벌응절리</지명>에서 부르는 말인 <지명 검색='1' 검색어='둔대산'>둔대산</지명>이 있고, 동쪽으로 난 <지명 검색='1' 검색어='둔대골'>둔대골</지명> 아래에 있었다. 현재 <지명 검색='1' 검색어='둔대골'>둔대골</지명> 골짜기 아래는 그린벨트(녹지대)로 묶여 개발이 제한되어 있다.</문단> 5) <소표제>[현황]</소표제> <문단><기관 검색='1' 검색어='부천역곡초등학교'>부천역곡초등학교</기관>가 있는 북쪽 지역에 해당되며, 도시 계획이 진행되어 주변에는 아파트 단지가 많이 들어서 있다. <지명 검색='1' 검색어='벌응절리'>벌응절리</지명>에서는 매년 음력 7월 초하루에 대동우물제를 지냈고, 음력 10월 초순에는 날을 정해 산신제를 지냈다. <지명 검색='1' 검색어='벌응절리'>벌응절리</지명>에서 <지명 검색='1' 검색어='여월'>여월</지명>~<지명 검색='0' 검색어=''>까치울</지명>로 연결된 길목에는 <지명 검색='1' 검색어='서낭당'>서낭당</지명>이 있었다.</문단> --> <문단><기관 검색='1' 검색어='부천역곡초등학교'>부천역곡초등학교</기관>가 있는 북쪽 지역에 해당되며, 도시 계획이 진행되어 주변에는 아파트 단지가 많이 들어서 있다. <지명 검색='1' 검색어='벌응절리'>벌응절리</지명>에서는 매년 음력 7월 초하루에 대동우물제를 지냈고, 음력 10월 초순에는 날을 정해 산신제를 지냈다. <지명 검색='1' 검색어='벌응절리'>벌응절리</지명>에서 <지명 검색='1' 검색어='여월'>여월</지명>~<지명 검색='0' 검색어=''>까치울</지명>로 연결된 길목에는 <지명 검색='1' 검색어='서낭당'>서낭당</지명>이 있었다.</문단> <문단><지명 검색='1' 검색어='벌응절리'>벌응절리</지명>는 그린벨트로 묶여 오랫동안 건축을 제한한 탓에 옛집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그래서 부천에서 보존해야 할 가치가 있는 오래된 옛집들이 여러 채 있다. 마을입구엔 물이 마른 <지명 검색='0' 검색어=''>대동우물</지명>이 보존되어 있다. 현재 <지명 검색='1' 검색어='벌응절리'>벌응절리</지명>에는 음식점들이 하나 둘씩 늘어가고 있는 추세이다.</문단>
2010.12.16 벌응절리 1) <지역>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역곡동</지역> --> <지역>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역곡동 역곡로 73번 길, 역곡로 85번 길 일대</지역> 2) <소표제>[정의]</소표제> <문단><지명 검색='1' 검색어='역곡동'>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역곡동</지명>에 있던 자연 마을.</문단> --> <문단><지명 검색='1' 검색어='역곡동'>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역곡동</지명>에 있는 자연 마을.</문단> 3) <소표제>[명칭유래]</소표제> <문단><서명 검색='0' 검색어=''>『조선지지자료』</서명>에는 <지명 검색='1' 검색어='벌응절리'>벌응절리(伐應節里)</지명>로 표기되어 있다. 한자대로 풀이를 하면 ‘치고 응하는 마을’, 즉 싸움에 대응해서 치고 응하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지명 검색='1' 검색어='벌응절리'>벌응절리</지명> 뒷산을 둔대라고 하는 데, 이 둔대를 군대가 주둔한 곳이라고 해석을 해서 군대가 치고 응하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지명 검색='1' 검색어='벌응절리'>벌응절리</지명>에서 ‘벌(伐)’은 개간되지 않은 상태의 벌판을 의미하며, ‘응절리’는 언저리를 말하므로, 벌판의 끝자락에 위치한 마을이라는 뜻이다.</문단> --> <문단><서명 검색='0' 검색어=''>『조선지지자료』</서명>에는 <서명 검색='0' 검색어=''>옥산면</서명>에 속하는 <지명 검색='1' 검색어='벌응절리'>벌응절리(伐應節里)</지명>로 표기되어 있다. 한자대로 풀이를 하면 ‘치고 응하는 마을’, 즉 싸움에 대응해서 치고 응하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지명 검색='1' 검색어='벌응절리'>벌응절리</지명> 뒷산을 둔대라고 하는 데, 이 둔대를 군대가 주둔한 곳이라고 해석을 해서 군대가 치고 응하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지명 검색='1' 검색어='벌응절리'>벌응절리</지명>에서 ‘벌(伐)’은 개간되지 않은 상태의 벌판을 의미하며, ‘응절리’는 언저리를 말하므로, 벌판의 끝자락에 위치한 마을이라는 뜻이다. <지명 검색='1' 검색어='벌응절리'>벌응절리</지명> 앞에서 <지명 검색='1' 검색어='역곡중학교'>역곡중학교</지명>, <지명 검색='1' 검색어='역곡시장'>역곡시장</지명>을 거쳐가는 감배들이 있어서 그걸 증명해준다.</문단> 4) <소표제>[자연환경]</소표제> <문단>서쪽에는 <지명 검색='1' 검색어='둔대산'>둔대산</지명>이 있고, 동쪽으로 난 <지명 검색='1' 검색어='둔대골'>둔대골</지명> 아래에 있었다. 지금은 <지명 검색='0' 검색어=''>안양천</지명>이 <지명 검색='1' 검색어='벌응절리'>벌응절리</지명> 앞까지 밀려들어 오고 있다. 현재 <지명 검색='1' 검색어='둔대골'>둔대골</지명> 골짜기 아래는 그린벨트(녹지대)로 묶여 개발이 제한되어 있다.</문단> --> <문단>서쪽에는 멀미의<지명 검색='1' 검색어='벌응절리'>벌응절리</지명>에서 부르는 말인 <지명 검색='1' 검색어='둔대산'>둔대산</지명>이 있고, 동쪽으로 난 <지명 검색='1' 검색어='둔대골'>둔대골</지명> 아래에 있었다. 현재 <지명 검색='1' 검색어='둔대골'>둔대골</지명> 골짜기 아래는 그린벨트(녹지대)로 묶여 개발이 제한되어 있다.</문단> 5) <소표제>[현황]</소표제> <문단><기관 검색='1' 검색어='부천역곡초등학교'>부천역곡초등학교</기관>가 있는 북쪽 지역에 해당되며, 도시 계획이 진행되어 주변에는 아파트 단지가 많이 들어서 있다. <지명 검색='1' 검색어='벌응절리'>벌응절리</지명>에서는 매년 음력 7월 초하루에 대동우물제를 지냈고, 음력 10월 초순에는 날을 정해 산신제를 지냈다. <지명 검색='1' 검색어='벌응절리'>벌응절리</지명>에서 <지명 검색='1' 검색어='여월'>여월</지명>~<지명 검색='0' 검색어=''>까치울</지명>로 연결된 길목에는 <지명 검색='1' 검색어='서낭당'>서낭당</지명>이 있었다.</문단> --> <문단><기관 검색='1' 검색어='부천역곡초등학교'>부천역곡초등학교</기관>가 있는 북쪽 지역에 해당되며, 도시 계획이 진행되어 주변에는 아파트 단지가 많이 들어서 있다. <지명 검색='1' 검색어='벌응절리'>벌응절리</지명>에서는 매년 음력 7월 초하루에 대동우물제를 지냈고, 음력 10월 초순에는 날을 정해 산신제를 지냈다. <지명 검색='1' 검색어='벌응절리'>벌응절리</지명>에서 <지명 검색='1' 검색어='여월'>여월</지명>~<지명 검색='0' 검색어=''>까치울</지명>로 연결된 길목에는 <지명 검색='1' 검색어='서낭당'>서낭당</지명>이 있었다.</문단> <문단><지명 검색='1' 검색어='벌응절리'>벌응절리</지명>는 그린벨트로 묶여 오랫동안 건축을 제한한 탓에 옛집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그래서 부천에서 보존해야 할 가치가 있는 오래된 옛집들이 여러 채 있다. 마을입구엔 물이 마른 <지명 검색='0' 검색어=''>대동우물</지명>이 보존되어 있다. 현재 <지명 검색='1' 검색어='벌응절리'>벌응절리</지명>에는 음식점들이 하나 둘씩 늘어가고 있는 추세이다.</문단> 6) <문헌><서명 검색어='조선지지자료'>『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서명>(<출판사항>조선총독부, 1919</출판사항>)</문헌> <문헌><서명 검색어='부천시사'>『부천시사』</서명>(<출판사항>부천시사편찬위원회, 2002</출판사항>)</문헌> --> <문헌><서명 검색어='조선지지자료'>『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서명>(<출판사항>조선총독부, 1919</출판사항>)</문헌> <문헌><서명 검색어='부천시사'>『부천시사』</서명>(<출판사항>부천시사편찬위원회, 2002</출판사항>)</문헌> <문헌>한도훈, 부천의 땅이름 이야기(부천문화원, 2001)</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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