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601231 |
---|---|
한자 | 卞綱之 |
영어음역 | Byeon Gangji |
이칭/별칭 | 국맥(國脉),정우공(正宇公)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부천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권만용 |
[정의]
조선 전기 부천 지역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국맥(國脉), 호는 정우공(正宇公). 밀양변씨 15세손이다. 부인은 의인(宜人) 청산김씨(靑山金氏) 김치제(金致齊)의 딸, 의인 고성이씨(固城李氏) 이수(李陲)의 딸이다. 아들은 합천군수를 지내고 좌통례(左通禮)에 추증된 변응몽[1519~?]이다. 아버지는 절도사와 공조판서, 순변사 등을 지냈고, 공장(恭莊)이란 시호를 받은 변종인(卞宗仁)[1433~1500]이다. 할아버지 변예생(卞禮生)[?~1444]은 우군사정(右軍司正)을 거쳐 사후에 이조참판(吏曹參判)에 추증되었다. 증조할아버지는 판사헌감사(判司憲監事)를 지낸 변을명(卞乙明)이고, 외할아버지는 안진(安震)이다.
변고적(卞高迪)을 시조로 하는 밀양변씨가 부천 지역에 정착한 것은 조선 초기 변강지의 할아버지인 변예생 때부터이다. 밀양변씨는 부천에 들어 온 이후 550여 년간 현재 경기도 부천시 고강동 지역인 흑량리(黑梁里)를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해왔다.
[활동사항]
변강지는 1480년(성종 11) 경자사마시(庚子司馬試)에 급제하였으며, 1492년(성종 23)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승문원 정자를 거쳐 정6품 사간원 정언(司諫院正言)과 종사랑(從仕郞)을 역임하였다. 1493년(성종 24) 아버지 변종인이 함경도절제사로 있을 때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를 만나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병으로 죽었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부천시 고강동 산63-7번지에 있다. 석물로는 묘비와 상석, 향로석, 문인석이 있는데, 묘비는 2기가 있다. 새로 만들어진 비석은 화관석, 비신, 비좌로 구성되어 있으며 비석 뒷면에는 국문·한문 혼용으로 글이 음각되어 있다. 봉분 앞의 옛 비석은 마모가 심하여 원문을 판독할 수 없는 상태이며, 좌우에 시립하고 있는 문인상도 마모가 진행 중인 상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