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6012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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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漢珪 |
영어음역 | Yi Hangyu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부천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성주현 |
[정의]
조선 중기 부천 지역 출신의 무신.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아버지는 세종의 아들인 화의군(和義君)의 5세손 이상지이고 어머니는 언양김씨이다. 가선대부병마절도사오위도총부도총관병조판서(嘉善大夫兵馬節度使五衛都摠府都摠管兵曹判書)에 추증된 이여적, 군수·좌승지(左承旨)에 추증된 이여희, 군수·좌승지(左承旨)에 추증된 이여익, 무과에 급제한 이여충, 통정대부부호군(通政大夫副護軍)이었던 이여명, 이여흠, 이여랑, 부호군(副護軍)이었던 이여신 등이 아들이다.
[활동사항]
1676년(숙종 2) 무과에 급제하여 내외 관직을 두루 지내고 포도대장(捕盜大將), 도감중군(都監中軍), 어영중군(御營中軍), 병조참판(兵曹參判) 및 정헌대부형조판서지중추부사겸오위도총관(正憲大夫刑曹判書知中樞府事兼五衛都摠管)을 지냈다. 1728년(영조 4) 영남에 난적이 창궐할 때 왕의 친위군을 이끌고 남하하여 난적을 토벌하였다. 1729년 68세의 일기로 타개하였다. 사후에 의정부 좌찬성(議政府左贊成)에 추증되었다.
[묘소]
처음에는 경기도 양주에 묘소를 마련하고 장사를 지냈으나, 1743년 여름 현재의 경기도 부천시 여월동 산55번지로 옮겼다. 이한규의 묘는 부천시 향토유적 제4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