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6060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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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春衣洞 |
영어공식명칭 | Chunui-dong |
이칭/별칭 | 표절리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기도 부천시 춘의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정은 |
[정의]
경기도 부천시에 속하는 법정동.
[명칭 유래]
춘의동은 원래 표절리(表節里)라고 불렀다. 표절리에 대한 유래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 온다. 예전에 춘의로 입구에 풍산 홍씨(豊山洪氏)가 받은 정려문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 정려문을 지날 때마다 홍씨의 절개에 경의를 표했다고 한다. 그래서 경의를 표한다는 표(表)와 절개를 뜻하는 절(節)을 마을 이름에 넣어 표절리로 불렀다. 표절리는 부천이 시로 승격되었을 때 춘의산 아래에 있는 동네라고 하여 춘의동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런데 춘의동의 ‘의’ 자는 기록에 전하는 것과는 다르다. 가장 오래된 기록인 족보와 『조선 지지 자료(朝鮮地誌資料)』에는 옷 의(衣)가 아닌 마땅 의(宜), 또는 생각 의(意)로 표기되어 있다. 그래서 이곳은 ‘봄을 생각하는 동네’, 혹은 ‘봄과 같이 따뜻한 동네’이기 때문에 춘의동이라 부르게 된 것이며, 따라서 동 이름·산 이름도 ‘춘의산(春意山, 春宜山)’ 또는 ‘춘의봉(春意峰, 春宜峰)’으로 표기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이 동네에 있는 양짓말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춘의동은 '봄을 생각할 수 있는 동네' 혹은 '마땅히 봄과 같이 따뜻한 동네'라는 뜻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형성 및 변천]
조선 후기 부평군 때는 옥산면 표절리였다가 1914년 부천군이 탄생하면서 계남면에 속하였다. 1941년 10월 1일 계남면이 소사읍 소속이 되었다. 1973년 7월 1일 부천군이 부천시로 승격되면서 소사읍에서 원미 춘의동으로 개편되었고, 1977년 5월 1일 원미 춘의동이 중앙동으로 바뀌었다. 1982년 1월 1일 중앙동이 원미동과 춘의동으로 분동되었으며, 1988년 1월 1일 구(區)제 실시로 중구에 편입되었다. 1993년 2월 1일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중구 춘의동에서 원미구 춘의동으로 소속이 변경되었다. 2016년 7월 4일 일반 구를 폐지하는 행정 체제 개편에 따라 부천시 춘의동이 되었다.
[자연환경]
춘의산을 끼고 있으며, 넓은 평야와 인접해 있는 농업·공업 병존 지역이다. 춘의산은 춘의동, 도당동과 여월동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이다. 산 안쪽에는 안골이라 하여 부천 시민의 식수를 제공하는 정수장이 자리하고 있다. 춘의산과 원미산 사이에 김포 국제 공항으로 가는 약간 언덕진 도로가 있는데, 이 고개를 당아래 고개라고 한다. 여기서 북쪽으로 전진하면 원미산 줄기의 능선이 나타나며, 전에는 이 언덕에 도당(都堂)이 있었다. 이 도당을 경계로 하여 춘의동 방면은 당아래 고개라고 하고, 북쪽인 성곡동으로 가는 고개를 구룡목 고개라고 한다.
[현황]
2016년 7월 현재 관할 면적은 2.92㎢[부천시 전체 면적의 5.5%]이며, 인구는 총 6,260가구 1만 4761명[남 7,471명, 여 7,290명]이다. 지역적으로 부천시의 중심부에 위치한 춘의동은 춘의역 등 사통팔달의 교통 요충지이다. 주거, 공업, 녹지 지역이 병존하는 지역으로 주민들은 마을에 대한 애착심과 정주 의식이 강한 편이다. 부천 최대의 문화·레저·스포츠 공원인 부천시 종합 운동장과 자연 생태 박물관을 비롯한 6개의 박물관이 자리하고 있으며, 부천 식물원과 청소년 산울림 수련관 등 부천시 문화 인프라가 집중되어 있다. 특히 2000년부터 주민 화합과 지역 공동체 형성 그리고 주민 자치 역량 함양을 위해 매년 4월 개최하고 있는 원미산 진달래꽃 축제는 문화 도시 부천을 알리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 또한 '복지 사각 지대 없는 행복한 마을 만들기' 사업으로 2014년 3월 결성된 춘의 희망 봉사단을 통해 주민이 주체가 되는 나눔과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