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07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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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黃裳 |
영어음역 | Hwang Sa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배상현 |
[정의]
고려 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창원(昌原). 아버지는 황석기(黃石奇)이고, 아들은 황윤서(黃允瑞)이다.
[활동사항]
황상은 충혜왕 때 호군이 되었으며, 공민왕 초에 밀직부사에 제수되고 추충익찬공신(推忠翊贊功臣)에 봉해졌다. 1354년(공민왕 3) 유탁(柳濯)을 따라 원나라에 가서 장사성(張士誠)을 토벌하는 데 공을 세웠으며, 돌아와서 지추밀원사가 되었다. 1356년 적신 기철(奇轍) 일파를 숙청하는 데 가담하여 그 공으로 동지추밀원사가 되었으며, 1358년에는 판추밀원사가 되어 1등공신에 부록되었다.
홍건적의 침입으로 왕이 경상북도 안동으로 몽진할 때 왕을 호종하여 교주강릉도만호(交州江陵都萬戶)가 되었다. 개경에 진을 치고 있는 홍건적을 총병관 정세운(鄭世雲)의 휘하에서 안우(安祐)·이방실(李芳實) 등과 공격하여 적을 대파하고 개경을 수복하였으며, 이공축(李公逐)과 함께 개경 수성의 책임을 맡았다. 1364년 최유(崔儒)가 덕흥군(德興君) 혜(譓)를 왕으로 추대하고 원병 1만 명으로 침공하자, 동북면도순토사(東北面都巡討使)가 되어 이성계(李成桂)와 더불어 격퇴하였다.
1381년(우왕 7) 3월에 왜구가 개경을 위협하자 나세(羅世)와 함께 연안 15곳에 군대를 주둔시켜 방비를 하였다. 선친 기일에 원씨부인(元氏婦人)을 취했다고 하여 헌사의 탄핵을 받았으나 우왕이 황상의 재주를 아껴 원씨부인을 유배하는 것으로 용서하였다. 무예에 능하고 용맹이 있어서 왕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궁술이 뛰어나 원 순제(順帝)의 부름을 받아 시범을 보이기도 하였다.
[상훈과 추모]
홍건적의 침입 때 세운 공로를 인정받아 신축호종공신 1등에 표록되고, 사직한 뒤 회성부원군(檜城府院君)에 봉해졌다. 시호는 공정(恭靖)이다. 이와 같은 내용이 『창원부읍지』에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