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07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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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管 |
영어음역 | Gim Gwan |
이칭/별칭 | 희범(希範),정성헌(靖醒軒),관(館)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배상현 |
출생 시기/일시 | 1250년 - 김관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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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266년 - 김관 명경과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277년 - 김관 감찰 어사·국자 사복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290년 - 김관 밀직사사 제수 |
몰년 시기/일시 | 1345년 2월 - 김관 사망 |
묘소|단소 | 김관의 묘소 - 경상남도 창원시 대산면 의창구 유등리 저소산(楮沼山)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김해 |
대표 관직 | 판도판서 |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에 묘소가 있는 고려 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희범(希範), 호는 정성헌(靖醒軒). 초명은 관(館)으로 왕이 직접 내린 이름이다. 아버지는 사인(舍人) 김용직(金容直)이다.
[활동사항]
김관[1250~1345]은 1266년에 명경과에 급제한 뒤 교서부를 거쳐 직한림원이 되어 안향(安珦)과 학문을 논하며 남다른 교분을 나누었다. 1270년 삼별초 항쟁이 일어나 안향이 적중에 억류되자 온갖 지혜를 다해 구출하므로, 왕이 감동하여 상을 내렸다. 1277년에 감찰 어사·국자 사업에 올랐으며, 1289년에 안향과 함께 충선왕을 호종하여 원에 가서 연경에 머물렀다. 1290년에 밀직사사가 되었으며, 1298년 다시 충선왕을 따라 원을 다녀왔다.
1301년 도성에 불이 나서 궁궐이 불바다가 되자, 위험을 무릅쓰고 화염 속에 갇힌 왕을 구출하였다. 1343년 원이 충혜왕을 게양으로 유배시키자 94세의 고령으로 충혜왕을 호종하였다. 이듬 해 악양에서 충혜왕이 죽자, 원의 조정에 나아가 자신을 인질로 삼고 대신 왕의 시신을 본국으로 보내어 장사토록 간청하였다. 이에 원 조정이 그의 충성심에 감동하여 왕의 시신과 함께 환국을 허락하였다. 1345년 충목왕이 판도 판서를 제수하고 궤장(几杖)을 내렸는데, 연로한 데다 충혜왕의 죽음에 대한 애도와 과로로 인해 그해 2월 19일 96세로 세상을 떠났다.
[학문과 사상]
1289년에 안향과 함께 충선왕을 호종하여 원에 가서 연경에 머무르는 동안 안향과 함께 『주자 전서(朱子全書)』를 수록하여 왔을 정도로 주자학을 받아들이는 데 적극적이었다.
[묘소]
묘소는 경상남도 창원시 대산면 유등리 저소산(楮沼山)에 있다.
[상훈과 추모]
1345년에 왕이 궤장(几杖)을 하사하였고, 사후에 문정(文貞)이라는 시호를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