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1301 |
---|---|
한자 | 社會運動 |
영어의미역 | Social Movement |
분야 |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성철 |
[정의]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사회 변화를 일으키거나 사회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집단적으로 전개되는 운동의 총칭.
[개설]
해방 이후 지속적으로 전개되어 왔던 민주화운동은 1987년 6월항쟁의 성공과 더불어 보다 세분화되고 다양한 사회 운동을 촉진시키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창원 지역에서도 6월항쟁을 기점으로 환경 운동, 여성 운동, 교육 운동, 농민 운동, 문화 운동 등 이른바 신사회 운동이라 불리는 다양한 형태의 사회 운동들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창원 지역에서는 경상남도의 인근 지역과 더불어 지역 현안 문제 뿐 만 아니라 환경 문제, 여성 문제, 교육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사회 운동 단체들이 조직·결성되어 때로는 독자적으로, 때로는 상호 연대를 통해 관련 활동을 펼쳐나가고 있다.
[환경운동]
마산·창원 지역의 경우 1991년 두산 기업에 의한 낙동강 페놀 방류 사건을 계기로 1991년 12월 7일 마산 창원 공해 추방 시민운동 협의회를 창립하였다. 이어 마산창원 공해 추방 시민운동 협의회는 시민 식수 수질 검사, 페놀 피해 대책 마련 등과 관련한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다음해인 1992년에는 대표단을 구성하여 브라질에서 열린 리우 국제 환경 회의에도 참석하였다.
리우 국제 환경 회의 참석을 계기로 환경 문제에 접근하는 시야가 보다 확대되면서 기존의 피해자 중심의 반공해 운동에서 시민 전체 차원으로 폭을 넓히고 전국적 차원에서 더 나아가 전 지구적 차원으로까지 확대시킨 환경 보전 활동을 전개하기 위한 연합체의 결성을 서두르게 되었다. 그 결과 1993년 4월 2일 전국 주요 지역에서 활동하던 8개 환경 단체가 단일 명칭의 조직으로 통합됨과 동시에 동일한 목표 아래 통일적 활동을 전개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기존의 마산 창원 공해 추방 시민운동 협의회가 마산 창원 환경 운동 연합으로 재 창립 되었으며 2008년 1월 23일에는 마산 창원 환경 운동 연합을 마산 창원 진해 환경 운동 연합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현재 마산 창원 진해 환경운동 연합은 각종 환경 파괴에 대한 강력한 감시 및 견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으며, 환경보호의 중장기적인 비전과 대안을 수립 및 실현하고자 시민들과 더불어 매진하고 있다.
[여성운동]
경상남도 지역의 여성 운동은 가톨릭과 개신교 등 종교 단체의 교육 프로그램에서 시작되었다. 1981년 8월 천주교 마산 교구에서 27명의 여성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농촌 현실과 농촌 여성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1박 2일간의 교육 프로그램이 처음 시작되었고, 이후 다양한 주제로 여성 노동자와 일반 부녀자들에도 개방되면서 여기서 교육을 수료한 여성들이 농민 운동, 노동 운동, 여성 운동 등을 개척해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여성 운동의 모태가 된 교육 프로그램은 1985년 12월 가톨릭 여성 회관에서 진행된 여성 지도력 개발 과정이었으며 당시 참여 여성 중 9명이 후속 모임으로 만들었던 ‘월요회’라는 모임이 마산·창원 여성 운동의 효시가 되었다. 이어 1986년에는 마산시 서성동에 여성 문화 공간인 북카페 ‘반’을 열었고 회원이 늘어나자 기존 월요회를 1반으로 하고 계속해서 2반과 3반을 만들어 조직을 확대해나갔다.
한편 6월항쟁 직전인 1987년 4월 17일에는 경남 여성회의 전신인 ‘경남 여성 문화 연구회’가 창립되어 6월항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함과 더불어 창원에다 지부까지 두게 되었다. 창원 지부는 풀뿌리 여성 조직을 확대하는 사업을 통해 여성 운동의 대중화와 일상화를 실천하기 위한 지부 활동을 전개함과 동시에 지회[가음정동 지회, 명곡 지회, 봉림 지회] 활동도 적극 장려하고 있다. 그리고 여성 활동가 교육, 여성 인권 향상과 권익 사업, 사회 교육과 사회 복지 증진 사업, 사회 교육 프로그램 운영 등과 관련된 활동도 수행하고 있다.
여성 리더십의 발굴, 여성 의제와 마을 의제의 발굴, 지역 사회 주민과 화합하기 위한 교양 강좌[유치부, 청소년, 성인 대상] 및 주민 무료 강좌[양성 평등 교육, 여성학, 법률, 성교육, 부모 교육, 자녀 교육 등] 프로그램 마련 등과 관련된 업무도 수행하고 있다. 성폭력, 가정 폭력, 성문제, 가족 문제 등을 상담해주는 성·가족 상담소 사업도 전개하고 있다.
여성 문제가 지역 또는 일국적 범위를 초월하는 인류 공동의 문제임을 인식하고 국내외 여성 단체는 물론 시민 사회 단체와의 연대 활동에도 주안점을 두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여성의 문제를 초월하는 사회 공동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 개혁 운동, 환경 운동, 평화 운동에도 관심을 두고 활동하고 있다.
[교육 민주화 운동]
교육 민주화 운동과 관련된 경상남도 지역 최초의 교사는 4·19혁명 직후 교원 노조 운동을 벌이다 1961년 5·16쿠데타와 함께 해직·구속됐던 마산 고등학교 이봉규 교사와 성호 초등학교 황낙구 교사였다. 그로부터 1980년대 초에 이르기까지 약 20여 년간 학교는 민주화 운동의 불모지였다. 교사는 독재자의 충실한 하수인이었고 학교는 독재 정권에 철저히 순응하는 국민을 길러내는 곳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1970년대에 대학에서 유신 독재의 실상을 직시하고 졸업한 세대들이 학교 교사로 현장에 부임하면서 점차 변화의 조짐이 일기 시작하였다. 특히 영남 대학교 사학과 재학 당시 반유신 독재 투쟁 전력이 있던 조창래 교사가 1978년 진주 삼현 여자 고등학교에 부임한 이 후 1983년부터 관심이 있는 진주 지역의 교사들을 모아 교육 민주화 운동을 위한 소모임 활동을 시작하였다.
교육 민주화 운동을 위한 소모임은 1984~1985년에 이르러 통영 여자 중학교의 권재명, 마산 여자 상업 고등학교의 고승하, 거창 고등학교의 표정숙 등의 교사들과 연결되면서 경상남도 단위의 교육 민주화 운동 단체로 확대되었다. 이들 외에도 진주 대아 고등학교의 문진헌, 통영 산양 중학교의 이영주, 창녕의 박종현, 마산 제일여자 중학교의 이인식, 마산 상업 고등학교의 안종복 등의 교사들도 상호 간에 직·간접적 연결망을 가지고 교육 민주화 운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한편 1986년에는 한국 YMCA 중등 교육자 협의회가 주도한 5·10 교육 민주화 선언으로 인해 1980년대 1차 해직 교사들이 양산되기 시작하였다. 당시 울산 지역을 포함하는 경상남도 지역에서는 통영 여자 중학교의 권재명, 울산 상북 종합 고등학교의 정익화, 울산 현대 공업 고등학교의 노옥희 등 3명의 교사가 해직되었다. 이 일로 10월 20일 마산 YMCA에서 ‘이 땅의 교육 민주화와 고난 받는 교사들을 위한 기도회’가 개최되어 정병권 이사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 기도회에서 해직 교사인 권재명 교사가 참여하여 교육 민주화 선언과 해직에 이르기까지의 경과 보고를 하였다.
이들의 활동은 1987년 5월 7일 5·10 교육 민주화 선언 1주년을 맞아 ‘호헌 철폐와 민주 개헌을 촉구한다’는 전국 해직 교사 56명의 성명서로 이어져 6월항쟁에 교사들이 적극 참여하는 중요한 계기의 하나로 작용하였다. 당시 해직교사들의 호헌 철폐 성명서에는 통영 중학교의 서형석, 울산 현대 공업 고등학교의 노옥희, 울산 상북 종합 고등학교의 정익화, 통영 여자 중학교의 권재명 등 4명의 경상남도 지역 해직 교사들의 명단도 올라 있다.
6월항쟁 이후 경상남도 지역 교사들은 1987년 7월 27일 광주에서 열린 ‘민주 교육 추진 전국 교사 협의회’ 건설을 결의하는 회의에 진주 삼현 여자 고등학교의 조창래 교사를 대표로 참석시키는 한편 그해 10월에는 진주 하대 성당에서 ‘경상남도 교사 협의회’를 창립하였다. ‘경상남도 교사 협의회’는 1989년 전국 교직원 노동조합 결성과 더불어 전국 교직원 노동조합의 일원으로 변모하여 이후로도 계속 경상남도 지역의 교육 민주화 운동을 이어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