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50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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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鎭海第-靑年同盟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양미숙 |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창원군 진해면에 있었던 청년 운동 단체 연합체.
[변천]
경남 창원군 진해면에서 1919년 창립한 진성회(進誠會)가 1925년 12월 13일 오전 11시 임시 총회를 개최하고 진해 제4 청년회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학원을 설립하여 문맹 퇴치 운동을 하였다. 1926년 10월 31일 제2회 정기 총회에서는 회관 건축, 교양 문제, 재정 문제, 경남 사회 운동자 대회에 관한 안건을 토의하였는데 박야개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1926년 12월 20일 임시 총회에서는 진해 청년회에서 발의한 도서관 설치에 협조할 것을 의결하였고, 그 위원으로 우두만(禹斗滿), 박야개(朴野介), 이용수(李龍守), 최두수(崔斗洙), 나종건(羅鍾健), 박차개(朴且介) 등이 선출되었다. 이 임시 총회에서는 매주 토요일에 독서회를 개최하여 자질 향상에 힘쓸 것을 결의하였다.
[현황]
진해 제4 청년 동맹은 중초 마을에 주로 거주하는 청년들이 구성되었다. 1927년 11월 회원 35명, 위원은 우두만 외 5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