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02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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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五龍洞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오룡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임은진 |
개설 시기/일시 | 1946년 - 천안군 천안읍 오룡동 설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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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 시기/일시 | 1963년 - 천안시 대룡동 관할에 편입 |
변천 시기/일시 | 1999년 - 천안시 중앙동 관할에 편입 |
변천 시기/일시 | 2008년 6월 23일 - 천안시 동남구 관할에 편입 |
학교 | 천안 중앙 초등학교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오룡동 179 |
공공 기관 | 오룡동 우체국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오룡동 184 |
금융 기관 | 외환 은행 천안 지점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오룡동 107-1 |
성격 | 법정동 |
면적 | 0.12㎢ |
가구수 | 346세대 |
인구[남,여] | 669명[남자 353명, 여자 316명] |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에 속하는 법정동.
[명칭 유래]
지형 생김이 명당인 오룡쟁주형(五龍爭珠形)이라 하여 오룡동(五龍洞)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형성 및 변천]
고려 때는 천안부에 속했다. 조선 시대 천안군 상리면에 속했다가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읍내리(邑內里)이라 하고 영성면에 속하게 하였다. 1917년 영성면이 천안면이 되었고,1931년 천안면이 천안읍이 되어 천안군 천안읍 읍내리가 되었다. 1939년 읍내리를 7개로 분리하여 일본식 동명인 욱정(旭町)이라 한 곳이다. 1946년 일본식 동명 개칭에 따라 오룡동이라 하였다. 1963년 천안읍이 시로 승격되면서 중일 출장소 관할에서, 1970년 대룡 출장소 관할에서, 1975년에 행정동인 대룡동 관할로 되었으며, 1999년 대룡동과 남산동을 합하여 행정동인 중앙동을 설치하여 중앙동(中央洞) 관할로 바뀌었다. 2008년 6월 23일 천안시 산하에 행정구인 동남구와 서북구를 설치하면서 동남구에 편입되었다.
[현황]
천안시 동남구에 있는 법정동으로 천안시 중앙부에 있다. 오룡동의 면적은 0.12㎢이며, 2012년 7월 현재 346세대 669명[남자 353명, 여자 316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문화동, 원성동, 대흥동, 사직동, 영성동과 경계를 접하고 있다.
옛 지명으로 객사, 내아 터, 선화루 터, 동헌 터, 삼문 터 등이 있다. 또한 ‘내아 터’는 현재 오룡동 우체국 자리로 이곳에서 아들을 낳으면 반드시 귀인이 된다는 전설이 있다. 1914년에 동리, 중리, 옥후리, 객사전, 서리, 정거장 일대를 통합하여 ‘읍내리’라 하고, ‘동리’는 읍내 동쪽에 있던 마을이며, ‘동락당 터’는 선화루 터로 여민동락의 뜻을 따서 명명한 것이다.
오룡동의 서쪽에는 대흥로(大興路)가 있으며, 영성로가 남북 방향으로 관통하고 있다.
오룡동은 과거 천안읍성 안에 있었던 지역으로 천안의 행정과 문화의 중심지로 천안군청[천원군청]이 있었던 곳이고, 관아, 객사, 문루 등이 있어서 많은 사람이 오가는 천안의 명동거리로 번화가였다. 오룡동 지역에 있었던 화축관 터는 조선 시대 때 여러 왕이 온양 온천 거동 길에 묵어간 행궁 자리로, 현재는 천안 중앙 초등학교, 오룡동 우체국, 외환 은행 천안 지점 등이 위치하고 있다. 또한 화축관의 문루였던 영남루(永南樓)는 1919년에 천안 중앙 초등학교 운동장 서쪽으로 옮겼다가, 1953년에 삼룡동 천안 삼거리 공원 안으로 옮겨 보존하고 있다.